오피니언

다행입니다!

다행입니다!

by 운영자 2014.08.12

요즘 들어 가장 어려운 일 가운데 하나는 많지도 않은 네 식구 일정 맞추는 일입니다.청춘사업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이십 대 두 아이와 겨우 날짜를 맞춰 야심차게 떠난 제주도 가족여행! 그런데 태풍이라니.
출발 시간이 늦어지더라도 비행기가 뜨기만 해도 다행이어서 북새통인 공항 사정도 아랑곳 없었습니다.

일일 강수량 최고치를 기록하며 물폭탄이 쏟아진 산간 쪽으로 간 것은 아니지만 3박 4일 내내 빗속에 갇혀 있어야 했습니다.

불타는 해변에서 그보다 더 뜨거운 젊음을 불태우려 했던 아이들은 새로 산 수영복을 가방 속에서 꺼내보지도 못했습니다.

차 안에서 혹은 실내 박물관과 찻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는데, 덕분에 네 식구 모두 노닥거리는 데 일가견이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어차피 어긋나버린 계획, 느긋하게 밥 먹고 수다 떨고 서로 사진 찍어주면서 그렇게 놀았습니다.

눈부신 해변의 추억은 만들지 못했지만 빗속에서 식구들이 설렁설렁 함께 보낸 그런대로 괜찮은 휴가의 기억을 간직하게 되었습니다. 다행입니다.

휴가가 끝나고 이틀 후, 친정어머니가 퇴원을 하셨습니다.

병세가 위중한 것은 아니니 돌아가며 조금이라도 쉬어 두는 게 좋겠다는 의논 끝에 떠난 휴가여서 은근히 마음이 쓰였는데 그 사이 호전돼 퇴원을 하게 된 겁니다.

조금 여위긴 하셨지만 그래도 두 발로 걸어 집으로 돌아오시니 그저 감사한 일입니다.

제 주위에는 짐작하기조차 어려울 만큼 긴 세월 동안 부모님을 간병하고 있는 자녀들이 있습니다.

그들에 비하면 정말 아무 것도 아니지만 예고 없이 닥친 어머니의 병은 모두를 힘들고 아프게 합니다.

노인복지 한다면서 정작 부모님 돌보는 일에는 무심했던 제 자신을 돌아보면서 반성 중입니다.

결코 빠른 것은 아니지만 지금이라도 알게 되었으니 다행입니다.

이런 와중에 8개월에 접어든 일본어 공부가 벽에 부딪쳤습니다.

최근에 반이 바뀌면서 새 선생님과 새로운 동급생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젊은 사람들이 모두들 어찌나 잘하는지 기가 죽어서 조금 알고 있는 것마저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넘어가기 일쑤입니다.

더는 안 되겠다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 두 아이가 나서서 조금만 더 버텨보라고 격려해 줍니다.

학원 갈 시간이 다가오면 긴장이 되고 마음이 무겁지만 그래도 배우고 싶은 마음이 있고 그동안 배운 것을 바탕으로 조금이라도 알아들을 수 있으니 그게 어디냐고 애써 위로합니다.

얼마나 갈지 모르지만 버틸 수 있는 것만도 다행입니다.

이런저런 다행스러움을 찾아내며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상을 지탱할 힘을 얻으니 이 또한 다행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