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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기억하는 이름

오래 기억하는 이름

by 운영자 2014.08.13

참 오랜만에 가족과 함께 영화를 보았습니다. 마침 군에 간 아들이 휴가를 나와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 ‘명량’을 같이 보았지요.우리에게 깊이 각인된 이름, 이순신 장군에 관한 영화라기에 더욱 관심이 갔습니다.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다는 것은 오히려 어려울 수 있는 일, 무엇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발걸음을 옮기게 하고 있는 것인지가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당시의 조선과 이순신이 처한 상황은 그야말로 풍전등화, 바람 앞의 등불이었습니다. 파죽지세로 밀고 닥쳐오는 왜군의 공격 앞에 속수무책, 나라를 지킬 그 어떤 힘도 남아 있질 않았습니다.

남아 있는 열두 척의 배를 포기하고 육군에 합류하라는 명령 앞에 이순신은 “바다를 버리는 것은 조선을 버리는 것입니다” 하면서,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있사옵니다!” 하는 상소를 임금께 올립니다.

300척이 넘는 왜군의 배를 두고 남은 것은 겨우 12척, 게다가 남은 병사들은 사기가 꺾여 도망을 치기에 급급한 상황, 그런데도 이순신은 ‘아직도’ 배가 12척 남았다고 말합니다.

무엇으로도 꺾을 수 없는, 기울어져 가는 나라를 지키려는 결기가 느껴졌습니다.

통제사라는 지위를 빼앗기고 게다가 모진 고문을 당하고, 나라는 그를 버렸지 싶은데 나를 버린 나라를 목숨을 걸고 지키려는 모습 앞에서 나라와 백성의 의미를 되짚어 보게 되었습니다.

영화 장면 곳곳에서 마음이 뭉클해지는 명대사를 만날 수가 있었는데, 참으로 이순신의 마음이 그러했겠다 싶은 대사들이었습니다.

임금과 조정의 대신들이 이순신 장군을 믿지 않고 파직과 목숨까지 빼앗으려 하는 상황 속에서도 “백성이 있어야 나라가 있고, 나라가 있어야 임금이 있는 법이지. 장수된 자의 의리는 충(忠)을 쫓아야 하고, 충은 백성을 향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 말은 참 무겁게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오늘 이 땅의 지도자들이 뼛속 깊이 새겨야 할 마음이라 여겨졌습니다.

12척의 배로 어떻게 왜군을 이길 수 있냐 아들 회가 물었을 때 이순신은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두려움은 필시 적과 아군을 구별치 않고 나타날 수가 있다. 저들도 지난 6년 동안 나에게 줄곧 당해온 두려움이 분명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승리할 수 있다. 독버섯처럼 퍼진 두려움이 문제지. 만일 그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만 있다면 그 용기는 백배 천배, 큰 용기로 배가 되어 나타날 것이다.”

생과 사의 갈림길을 수없이 지나온 자만이 들려줄 수 있는 울림이 깊은 말이었습니다.

영화 말미에서 만난 대사가 선명하게 마음에 남습니다. “어떻게 회오리 바다를 전투에 이용할 생각을 했냐?”고 아들이 묻자 이순신은 “천행은 회오리 바다가 아닌, 백성이었다.”고 대답합니다.

백성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그 백성의 힘을 충분히 신뢰한 참된 지도자가 할 수 있는 말이었습니다.

역사 속에 새겨진 이름은 거저 새겨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래 기억하는 이름은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