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간이역
내 인생의 간이역
by 운영자 2014.08.14
급행열차가 출현하면서 간이역이라는 말이 생겼겠다. 역마다 다 서는 완행열차에 비하면 급행열차는 큼직한 역만 정거한다.급행열차를 타면서부터 나의 인생에도 속도가 붙었다. 그리고 속도를 내는 법을 급행열차를 통해 배웠다.
승객이 많은 역만 서고, 한두 명의 승객이 기다리는 작은 역은 모르는 체 지나치는 것이 급행열차의 속도다.
서울로 터전을 옮겨앉은 나는 도시의 빠른 리듬을 즐겼다. 속도를 알아가던 내 눈에 간이역이 보일 리 없었다.
내가 가고 있는 길 바깥에서 누가 내게 도움을 청하면 나는 말했다. 보다시피 시간에 쫓기고 있다네! 그렇게 엄살을 떨며 금방 잡힐 것 같은 욕망을 향해 질주했다.
마치 급행열차가 간이역에서 기다리는 승객들을 외면하듯 나도 그들을 외면했다.
간이역, 질주하는 이에게 아무 도움도 안 되는, 어찌보면 있으나 마나해 보이는 역이 간이역이다. 근데 그 있으나마한 역이 때로는 앞만 보고 달리는 나의 뒷허리춤을 잡아당기곤 했다.
천일국이며 달리아가 호젓이 피고, 열차 신호기가 우두커니 서 있는 그 작은 역이.
지난 금요일, 나는 차를 몰아 8월 내 마음의 간이역을 향해 달렸다. 중앙고속도로에서 제천으로 방향을 틀어 38번 국도를 타고 가 함백에서 멈추었다. 거기가 나의 첫 발령지였다.
당시 함백엔 굴지의 석탄광업소가 있었고, 광부들의 교대 시간을 알리는 시보는 수업시간을 알리는 종소리보다 더 컸다. 무연탄을 실어 나르는 함백역은 석탄더미로 둘러싸여 있었고, 바람이라도 불면 탄가루가 이불자락처럼 날아올라 온 마을을 캄캄하게 뒤덮었다.
그곳에서 나는 1년을 근무하고 떠났다. 아무 아름다울 것도, 정들 것도 없는 그곳이 왜 나를 불러냈을까. 나는 폐광이 되어 사람 그림자라곤 없는 마을을 지나 단 5학급뿐인 초등학교 운동장에 들어섰다.
교실 안에서 리코더 소리가 났다. 몇 아이들이 방학숙제라며 고개를 주억거리며 연습을 한다.
창가에 서서 나는 그 옛날의 풍금소리처럼 리코더 소리를 듣다가 발길을 돌렸다. 작은 교사며 운동장이며 국기봉에 매달린 국기가 참 외로워 보였다. 아니, 외로운 건 나였다.
좀 늦긴 했지만 이쯤에서 나는 내 인생을 둘러보았다. 예전 내게 도움을 청하던 이들도 내 곁에 없고, 호형호제 하던 동료들도 없다. 휴대폰에 적혀있는 이 수많은 전화번호들도 이제는 쉽게 불러낼 이들이 아니다.
그러니까 이제야 알겠다. 여기까지 나를 불러낸 나의 간이역이 내게 외로움에 대해 말해 주고 싶었던 거다. 질주하는 급행열차에서 내리라는 것, 혼자를 배우라는 것. 한 때 지칠 줄 모르게 번창하던 이 광산촌도 지금은 폐광이 되어 빈집들과 녹슨 철길이 뿜어내는 고적함에 휩싸여 있다.
그때의 시커먼 석탄물이 아닌 맑은 개울물에서 나는 오히려 더 큰 외로움만 느꼈다.
인적없는 플라타너스 그늘에 앉아 외로이 우는 매미소리를 듣다가 일어섰다. 하룻밤 자고 가리라 하고 왔는데 나는 그 곳을 그냥 떠나 돌아왔다. 너무 외로워서 장맛비에 웃자란 풀처럼 금방 쓰러질 것 같았다.
이 외로움을 어디에 쓸 것인가. 나는 내 몸 가득히 차오른 외로움의 쓸모에 대해 생각했다.
승객이 많은 역만 서고, 한두 명의 승객이 기다리는 작은 역은 모르는 체 지나치는 것이 급행열차의 속도다.
서울로 터전을 옮겨앉은 나는 도시의 빠른 리듬을 즐겼다. 속도를 알아가던 내 눈에 간이역이 보일 리 없었다.
내가 가고 있는 길 바깥에서 누가 내게 도움을 청하면 나는 말했다. 보다시피 시간에 쫓기고 있다네! 그렇게 엄살을 떨며 금방 잡힐 것 같은 욕망을 향해 질주했다.
마치 급행열차가 간이역에서 기다리는 승객들을 외면하듯 나도 그들을 외면했다.
간이역, 질주하는 이에게 아무 도움도 안 되는, 어찌보면 있으나 마나해 보이는 역이 간이역이다. 근데 그 있으나마한 역이 때로는 앞만 보고 달리는 나의 뒷허리춤을 잡아당기곤 했다.
천일국이며 달리아가 호젓이 피고, 열차 신호기가 우두커니 서 있는 그 작은 역이.
지난 금요일, 나는 차를 몰아 8월 내 마음의 간이역을 향해 달렸다. 중앙고속도로에서 제천으로 방향을 틀어 38번 국도를 타고 가 함백에서 멈추었다. 거기가 나의 첫 발령지였다.
당시 함백엔 굴지의 석탄광업소가 있었고, 광부들의 교대 시간을 알리는 시보는 수업시간을 알리는 종소리보다 더 컸다. 무연탄을 실어 나르는 함백역은 석탄더미로 둘러싸여 있었고, 바람이라도 불면 탄가루가 이불자락처럼 날아올라 온 마을을 캄캄하게 뒤덮었다.
그곳에서 나는 1년을 근무하고 떠났다. 아무 아름다울 것도, 정들 것도 없는 그곳이 왜 나를 불러냈을까. 나는 폐광이 되어 사람 그림자라곤 없는 마을을 지나 단 5학급뿐인 초등학교 운동장에 들어섰다.
교실 안에서 리코더 소리가 났다. 몇 아이들이 방학숙제라며 고개를 주억거리며 연습을 한다.
창가에 서서 나는 그 옛날의 풍금소리처럼 리코더 소리를 듣다가 발길을 돌렸다. 작은 교사며 운동장이며 국기봉에 매달린 국기가 참 외로워 보였다. 아니, 외로운 건 나였다.
좀 늦긴 했지만 이쯤에서 나는 내 인생을 둘러보았다. 예전 내게 도움을 청하던 이들도 내 곁에 없고, 호형호제 하던 동료들도 없다. 휴대폰에 적혀있는 이 수많은 전화번호들도 이제는 쉽게 불러낼 이들이 아니다.
그러니까 이제야 알겠다. 여기까지 나를 불러낸 나의 간이역이 내게 외로움에 대해 말해 주고 싶었던 거다. 질주하는 급행열차에서 내리라는 것, 혼자를 배우라는 것. 한 때 지칠 줄 모르게 번창하던 이 광산촌도 지금은 폐광이 되어 빈집들과 녹슨 철길이 뿜어내는 고적함에 휩싸여 있다.
그때의 시커먼 석탄물이 아닌 맑은 개울물에서 나는 오히려 더 큰 외로움만 느꼈다.
인적없는 플라타너스 그늘에 앉아 외로이 우는 매미소리를 듣다가 일어섰다. 하룻밤 자고 가리라 하고 왔는데 나는 그 곳을 그냥 떠나 돌아왔다. 너무 외로워서 장맛비에 웃자란 풀처럼 금방 쓰러질 것 같았다.
이 외로움을 어디에 쓸 것인가. 나는 내 몸 가득히 차오른 외로움의 쓸모에 대해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