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십대도 팔팔한 영문 잡지 발행인
팔십대도 팔팔한 영문 잡지 발행인
by 운영자 2014.08.29
우리나라에서 발행되는 대표적인 영문 월간지는 외교전문 ‘디플로머시’(Diplomacy)와 정치, 외교, 경제, 문화 등 종합 매체 ‘코리아 포스트’(Korea Post)다. 공통점은 한국을 세계에 알리고 세계를 한국에 소개하는 것이다.두 영문 월간지 발행인은 팔십대로 대중성 없는 영문 외교 잡지를 30∼40년 가까이 이끌어 온 저력이 대단하다.
인터뷰를 직접하고 기사를 쓴다는 게 놀랍다.
한 달 간격으로 두 발행인을 잇달아 인터뷰하면서 팔십대에도 팔팔하게 일하는 것이 존경스럽고 부럽다.
올해 창간 39년째인 ‘디플로머시’ 임덕규 발행인은 여든 살. “한 호도 거르지 않고 발행하면서 어려움이 많았겠다”고 묻자 “100년 동안 신나게 놀다간다는 생각으로 일 한다.”고 에둘러 대답한다.
“NO를 설득해 YES로 이끌어 내는 것이 민간 외교관”이라는 외교적 수사도 능수능란하다. 그동안 커버스토리로 각국 대통령, 수상, 국왕, 석학 등 세계 지도자와 저명인사 460여명을 인터뷰하여 표지 인물로 장식했다.
편집실 한 쪽 벽은 표지로 도배를 했고, 발행인실 한 쪽 벽은 그들과 찍은 사진들이 빼곡하다.
11대 국회의원, 국제외교협회와 세계국제법협회 회장 등을 거치며 그가 구축한 어드바이서 네트워크는 500여명. 외교가에서 ‘닥터 임’으로 통하는 여세를 몰아 반기문 UN사무총장 탄생의 막후 역할을 한 ‘일등 공신’으로 평가 받는다.
한국에서 UN사무총장을 배출하면 국익에 도움 될 것이라 판단하여 출마를 권유한 것도 그다. 언론사 기고를 통해 ‘유엔사무총장은 꿈이 아니다’는 당위성을 강조하는 등 여론몰이를 했다.
주한 외교관들을 대상으로 ‘반사모(반기문 장관을 사랑하는 모임)’를 만들어 선거운동을 펼쳤다. 세 차례의 예비투표에서 1등 한 것을 지켜본 뒤 병상에 누울 정도로 열성을 쏟았다. 건강관리를 어떻게 하느냐는 물음엔 “선거운동과 뇌 운동만 한다”며 호방하게 웃는다.
‘코리아 포스트’를 창간하여 27년 째 이끌고 있는 이경식 발행인은 여든 셋.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건강미가 넘친다.
105개국 주한 대사들의 지자체 행사 참가와 상무관들의 기업 탐방 프로젝트를 운영하며 안내와 통역을 한다. 국내 유력 일간지 톱뉴스 헤드라인을 발췌하여 번역한 뒤 매일 아침 독자에게 e-메일로 무료 서비스하는 것도 그의 몫이다.
학창시절, 6.25전쟁에 참전한 영국군 통역을 맡은 게 ‘영어 인생’의 계기가 됐다. 하루 100개 넘게 단어를 외우고 영문소설을 읽은 것도 그 시절이다.
영어실력을 닦은 기반은 ‘야전형’이다. 현역병 때도 통역병으로 근무했다.
번역 작가의 등용문 격인 ‘한국문학번역상’ 대상의 영예를 차지하면서 ‘명품 영어’소문이 났다. 한국문학을 번역하며 국내 영자 일간신문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1980년 언론통합 때 언론계를 떠나 87년 영문 월간지를 창간했다. “나이를 잊고 일할 수 있는 것이 보람”이라는 그는 “기력이 떨어져 컴퓨터 키보드를 두들길 힘이 없어 질 때까지 일 하겠다.”고 다짐한다.
‘무관의 민간외교관’으로 팔십대에도 일할 수 있다는 건 행복이다. 활기차게 일하는 노인이 많은 사회는 건강하다.
인터뷰를 직접하고 기사를 쓴다는 게 놀랍다.
한 달 간격으로 두 발행인을 잇달아 인터뷰하면서 팔십대에도 팔팔하게 일하는 것이 존경스럽고 부럽다.
올해 창간 39년째인 ‘디플로머시’ 임덕규 발행인은 여든 살. “한 호도 거르지 않고 발행하면서 어려움이 많았겠다”고 묻자 “100년 동안 신나게 놀다간다는 생각으로 일 한다.”고 에둘러 대답한다.
“NO를 설득해 YES로 이끌어 내는 것이 민간 외교관”이라는 외교적 수사도 능수능란하다. 그동안 커버스토리로 각국 대통령, 수상, 국왕, 석학 등 세계 지도자와 저명인사 460여명을 인터뷰하여 표지 인물로 장식했다.
편집실 한 쪽 벽은 표지로 도배를 했고, 발행인실 한 쪽 벽은 그들과 찍은 사진들이 빼곡하다.
11대 국회의원, 국제외교협회와 세계국제법협회 회장 등을 거치며 그가 구축한 어드바이서 네트워크는 500여명. 외교가에서 ‘닥터 임’으로 통하는 여세를 몰아 반기문 UN사무총장 탄생의 막후 역할을 한 ‘일등 공신’으로 평가 받는다.
한국에서 UN사무총장을 배출하면 국익에 도움 될 것이라 판단하여 출마를 권유한 것도 그다. 언론사 기고를 통해 ‘유엔사무총장은 꿈이 아니다’는 당위성을 강조하는 등 여론몰이를 했다.
주한 외교관들을 대상으로 ‘반사모(반기문 장관을 사랑하는 모임)’를 만들어 선거운동을 펼쳤다. 세 차례의 예비투표에서 1등 한 것을 지켜본 뒤 병상에 누울 정도로 열성을 쏟았다. 건강관리를 어떻게 하느냐는 물음엔 “선거운동과 뇌 운동만 한다”며 호방하게 웃는다.
‘코리아 포스트’를 창간하여 27년 째 이끌고 있는 이경식 발행인은 여든 셋.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건강미가 넘친다.
105개국 주한 대사들의 지자체 행사 참가와 상무관들의 기업 탐방 프로젝트를 운영하며 안내와 통역을 한다. 국내 유력 일간지 톱뉴스 헤드라인을 발췌하여 번역한 뒤 매일 아침 독자에게 e-메일로 무료 서비스하는 것도 그의 몫이다.
학창시절, 6.25전쟁에 참전한 영국군 통역을 맡은 게 ‘영어 인생’의 계기가 됐다. 하루 100개 넘게 단어를 외우고 영문소설을 읽은 것도 그 시절이다.
영어실력을 닦은 기반은 ‘야전형’이다. 현역병 때도 통역병으로 근무했다.
번역 작가의 등용문 격인 ‘한국문학번역상’ 대상의 영예를 차지하면서 ‘명품 영어’소문이 났다. 한국문학을 번역하며 국내 영자 일간신문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1980년 언론통합 때 언론계를 떠나 87년 영문 월간지를 창간했다. “나이를 잊고 일할 수 있는 것이 보람”이라는 그는 “기력이 떨어져 컴퓨터 키보드를 두들길 힘이 없어 질 때까지 일 하겠다.”고 다짐한다.
‘무관의 민간외교관’으로 팔십대에도 일할 수 있다는 건 행복이다. 활기차게 일하는 노인이 많은 사회는 건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