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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로변 아이의 꿈

철로변 아이의 꿈

by 운영자 2014.09.02

자욱한 안개 속에 / 보슬비가 내리면 굴뚝 옆에 앉아서 /생솔 연기 맡으며
십 리 밖 / 기적소리에도 / 마음은 그네를 타고
여덟 시 화물차가 / 덜컹대고 꼬릴 틀면
책보를 둘러메고 / 오리 길을 달음질쳐
단발의 / 어린 소녀가 / 나폴대며 가고 있다
- 졸시, 「철로변 아이의 꿈」부분 -

골이 깊다고 하여 깊은개(사투리로 짚은개)로 불렸던 심심산골 나의 고향 심포리는 최민식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꽃 피는 봄이 오면’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초등학교 1, 2학년 시절 집에서 기찻길을 따라 5리쯤 있는 곳에 심포초등학교가 있었다.

시계가 없던 시골에서 시간을 알려주는 것은 오로지 기차였다. ‘기차는 8시에 떠나네’라는 노래 제목처럼 , 8시가 되면 흥전역에서 화물차가 기적을 울리면서 우리 마을로 올라오는데 그 소리가 들리면 우리는 서둘러 책보를 둘러메고 심포리 학교를 향해 가기 시작했다.

짧은 단발머리를 언니께 묶어 달라고 하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떼를 쓰며 몇 번씩 다시 묶는 날은 기차가 집 옆을 통과해 버린다.

그때부터 마음이 급해져서 언니와 나는 지각하지 않으려고 기차를 좇아 달음박질치기 시작한다.

내가 달리기를 잘 하는 건 순전히 그 때의 덕분인지도 모른다. 운동회를 하는 날이면 상으로 주던 공책을 10권 이상씩 받아 1년 내 쓰기도 하였고,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100m 기록이 반에서 거의 1등이었다.

학교까지 가려면 세 갈래 길이 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빠른 길은 기찻굴을 통과하는 길이고, 두 번째는 기찻굴 등을 따라가서 다시 기찻길과 만나는 길이고, 세 번째는 기찻굴 등으로 가다가 높은 언덕을 넘어 학교건물 뒤쪽 길이었다.

빨리 가기 위해 기찻굴로 가려면 컴컴하고, 중간쯤 천정에서 물도 뚝뚝 떨어지고, 또 기차를 만날까 두려워 우리는 그 길을 잘 다니지는 않았지만, 늦는 날은 가장 빠른 지름길이다.

기찻굴등으로 가는 길엔 어린애기 무덤이 참 많았다. 애기무덤은 잔디를 입힌 것이 아니라 돌을 쌓아놓았기 때문에 왠지 더 무섭게 느껴졌다.

평일엔 모르다가 날이 흐리거나 비라도 추적거리는 날에는 우리는 무서워서 삼삼오오 짝을 지어 더 많이, 더 크게 떠들면서 그 길을 오고 갔다.

가장 멀리 돌아가는 학교뒷길은 큰 엄나무가 한 그루 서 있었는데, 가끔 그곳에서 동네굿을 하는 서낭당격이라 헝겊쪼가리들이 많이 붙어 있었으며 그곳을 지나자면 귀신이 붙을 것 같아 우리는 가능하면 그곳을 빨리 통과하기 위해 뜀박질을 하곤 했다.

수업이 끝나고 친구들과 오면서 기찻길가 아카시아 나무가 많은 곳에서, 점심시간에 안 먹고 놔둔 도시락을 먹곤 하였다. 보리밥에 고추장이나 열무김치, 아니면 고추장에다가 풋고추 몇 개가 반찬의 전부였지만, 누구도 투덜대지 않았다.

도시락에 고추장과 열무김치를 넣고 흔들면 자연스럽게 비빔밥이 되어 우리는 둘러앉아 재잘대며 먹곤 하였다.

그리고는 아카시아 꽃을 따다가 끝부분의 꿀을 빨아먹기도 하고, 아카시아 줄기에서 잎을 훑어내고 서로의 머리를 말고 한참 두면, 신기하게도 곱습곱슬한 퍼머머리가 되곤 하였다.

얼마 전 폐선이 된 고향의 기찻길을 걸으며 아련한 추억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 때의 친구들이 새삼 그립고 보고 싶다. 인간은 추억을 먹고 사는 동물이라고 했던가. 추억의 꽃잎들이, 그 향기가 아직도 펄펄 날리는 고향의 철길…. 철로변 아이의 꿈들은 이루어졌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