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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소에서 만나는 나무

산소에서 만나는 나무

by 운영자 2014.09.11

추석 연휴는 성찰의 시간이다. 이 기간 동안 조상을 통해 자신의 삶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조상을 만나는 곳은 산소이다.요즘은 밭 자락에도 묘를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산소의 의미가 점차 줄지만, 산에 자리 잡은 묘는 나무가 매우 중요하다.

우리나라 산소 주변에는 대부분 자생하는 소나무지만, 후손들은 묘소 주변에 측백나무나 향나무 혹은 배롱나무를 심는다. 묘소에 이러한 나무를 심는 것은 유래가 있다.

중국의 주나라 시대에 천자(天子)의 무덤에는 소나무를, 제후(諸侯)의 무덤에는 측백나무를, 대부(大夫)의 무덤에는 모감주나무를, 사(士)의 무덤에는 회화나무를, 민(民)의 무덤에는 버드나무를 심었다.

천자와 제후의 무덤에 심은 것은 늘 푸른 나무인 반면, 대부와 사와 민의 무덤에 심은 것은 갈잎나무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무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측백나뭇과의 측백나무와 향나무는 제후의 무덤에 심은 사례를 모방한 것이다.

일반인들의 무덤에는 버드나무를 심었지만 지금은 예외 없이 측백나무와 향나무를 심는다.

중국에서 신분에 따라 나무의 종류를 달리한 것은 나무에도 격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소나무는 중국이나 우리나라의 경우 가장 높은 신분의 무덤에 심었다.

소나무를 선호한 것은 늘 푸른 기상을 가진 품격과 강렬한 자태 때문이다.

제후의 무덤에 측백나무를 심은 것은 이 나무의 품격이 소나무처럼 높기 때문이다. 나무의 품격은 푸른 잎과 더불어 수명과 수형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중국의 경우 산동성에서 섬서성까지 황하 유역 곳곳에는 5000살부터 몇 백 살에 이르는 측백나무가 셀 수 없이 많다.

나이 많은 측백나무를 직접 보면 그 기상에 압도당한다.

그래서 측백나무는 소나무 다음으로 높은 신분에 위치한 제후를 상징하는 나무였다.

모감주나무와 회화나무 및 버드나무는 소나무와 측백나무와 비교하면 그 기상이 강한 인상을 주지는 않는다. 반면에 무환자나뭇과의 모감주나무와 콩과의 회화나무는 강한 인상보다는 자유로운 느낌을 준다.

특히 회화나무는 학자수로 불릴 만큼 자유로운 수형이 특징이다. 버드나뭇과의 버드나무는 나무 중에서도 가장 척박한 곳에서도 잘 자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그래서인지 가장 낮은 신분에 위치한 민의 무덤에 심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 누구도 조상의 무덤에 버드나무를 심지 않는다. 중국 명나라 이시진의 본초강목(本草綱目)에 따르면, 버드나무와 여자는 어느 상황에서도 살아남는다고 했다.

그만큼 버드나무는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나무이다. 그래서 이별할 때 버드나무를 꺾어 주어 죽지 않고 돌아오라는 징표로 삼았던 것이다.

전통시대에는 무덤조차도 나무로 신분을 구분했다. 지금도 전통을 계승하고 있지만, 그 의미를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전통의 계승은 반드시 그대로 구현할 필요는 없다. 시대에 따라 전통도 변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전통의 계승에서 유의할 것은 정신적 가치를 훼손하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정신적인 가치마저 훼손하면 전통은 불순물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사라지기 때문이다. 인간이 만나는 한 그루의 나무에는 언제나 문화도 함께 성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