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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서 꽃피운 애니메이션

한국 정서 꽃피운 애니메이션

by 운영자 2014.09.12

메밀꽃이 아름답지는 않다. 산비탈 척박한 땅에 아무렇게나 씨앗을 뿌려도 강인한 생명력으로 이맘때면 꽃을 무더기로 피워 올린다.메밀은 입에 풀칠하기도 어렵던 시절 허기를 면해주던 구황식물(救荒植物)이다.

볼품없는 꽃에 새 생명을 불어 넣은 것이 ‘메밀꽃 필 무렵’의 이효석 작가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는 묘사는 숨이 막힐 듯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명문이다.

강원도 평창 봉평에서 해마다 열리는 ‘메밀꽃축제’를 가끔 찾는 연유도 소설의 모티브가 된 메밀꽃을 배경으로 작품 속 무대의 숨결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축제 명칭은 ‘평창효석문화제’로 바뀌었고, 지금도 축제기간이다.

토속적 정서로 탐미적 미학의 정점을 찍은 ‘메밀꽃 필 무렵’은 영화와 TV드라마로 재현됐고, 극장용 애니메이션 ‘메밀꽃, 운수 좋은 날, 그리고 봄봄’으로 재탄생 되어 한국 정서를 꽃피웠다.

근대 단편문학의 백미로 꼽히는 ‘메밀꽃 필 무렵’과 김유정의 ‘봄봄’,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 세 편을 90분 옴니버스로 담아냈다.

‘메밀꽃 필 무렵’은 아련한 향수에 달빛을 흩뿌리듯 팍팍해진 심상을 정화 시킨다. 해학과 풍자가 넘치는 ‘봄봄’은 판소리 도창(導唱)을 도입하여 소리와 아니리로 소설 속 질펀한 어휘와 리듬을 구수하게 풀어냈다.

‘운수 좋은 날’은 1920년대 경성 시내 거리와 전차, 상점과 성곽을 사실주의 표현으로 담백하게 그려냈다.

태블릿PC 작업이 아니라 연필로 그린 7만장의 그림으로 한국적 정서를 촘촘히 엮은 수작이다. 화려한 3차원(3D) 애니메이션 대신 정겨운 2차원(2D) 애니메이션 화면 속에 원작의 아날로그적 감성이 수채화처럼 아롱거린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보며 자란 세대들이 한국의 서정과 감성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지난 8월 21일 개봉하여 일주일 만에 독립영화 흥행 기준인 누적관객 수 1만 명을 돌파한 뒤 2만명을 넘었다. 손익분기점을 넘기려면 멀었지만 전국 55개 스크린에서 상영 중인 것을 고려하면 선전하고 있는 셈이다.

‘뽀롱 뽀롱 뽀로로’를 만들어내는 한국 애니메이션이 왜 미국 픽사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과 일본 지브리 스튜디오 애니메이션을 따라 잡지 못하느냐는 우려는 ‘메밀꽃, 운수 좋은 날, 그리고 봄봄’이 ‘메밀꽃’처럼 흐드러지게 가능성의 꽃을 피웠다.

관객 1700만 명을 동원하며 신기록을 세운 영화 ‘명량’의 초기 스크린 수가 139개이었음을 상기하면 독립영화는 너무 홀대 받는다.

스크린 확보가 하늘의 별따기다. 네티즌들은 “고등학교 문학시간에 배운 작품들이라 향수를 떠올리게 해서 좋아요” “배급 신경 좀 써주세요. 이런 작품을 많은 이들이 봐야죠. 애들하고 보기도 좋은 영화인데, 안타깝습니다.” 보고 싶어도 상영관을 찾기가 어렵다는 불만의 소리가 많다.

주제의식이 강하고 창조성이 돋보이는 애니메이션 문화콘텐츠를 누구나 즐길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해주고 접근성을 마련해 주는 것이 창조경제와 문화융성을 실현하는 디딤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