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삭철도
강삭철도
by 운영자 2014.09.15
태백산맥 굽이마다 / 흐르는 바람결도 심포리서 통리고개 / 통리에서 심포리길
도도한 / 태백준령을 / 다시 한 번 만났다
삼척, 도계, 심포리를 / 거쳐온 숨찬 기차 // 급경사 통리고개 / 더 이상은 가지 못해 // 아득한 / 산기슭에선 / 주저앉고 싶어했다
- 졸시, 「통리고개」전문
심포리와 통리 구간에는 국내 유일의 강삭철도(鋼索鐵道, Cable-Railway)였던 로프형철도가 있었다. 스위치백 철도보다도 더 경사가 많이 진 경우에 만든 것이다.
국내 유일인 스위치백 구간과 국내 유일인 강삭철도 구간이 모두 도계와 통리 사이의 철길이었으니 국내의 이색적인 철도 모형을 모두 볼 수 있는 곳이 도계와 통리의 중간인 ‘심포리’였다.
강삭철도는 레일 위에 설치된 차량을 밧줄로 견인하여 운행하는 철도이다.
즉 물체가 매우 큰 경우 차량을 운전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로프에 차량을 팽팽하게 연결하고 권양기를 이용하여 쇠줄로 끌어올리는 방식이다. 종종 ‘인클라인 철도(Incline Railway)’ 또는 ‘케이블카(Cable Car)’로 불리기도 한다.
예전 사람들은 ‘강색선’, 또는 ‘마끼’라고 불렀다.
심포리와 통리 1.1Km 구간에는 1940년에 설치되어 1963년 5월 20일까지 운행되었다.
화물열차는 인크라인에 의해 한 번에 한 차량씩 끌어올렸지만 여객열차는 무거워 끌어올릴 수 없었다.
때문에 영주 쪽에서 오는 영동선 여객열차는 통리역이 종착역이었고, 강릉 쪽에서 오는 여객열차는 심포리역이 종착역이 되었다.
승객들은 통리역이나 심포리역에서 내려서 가파른 비탈길을 걸어 오르고, 걸어 내려와 다음역의 열차를 타야했다.
짐이 많은 이를 위해 짐꾼인 지게꾼이 등장하게 되었고, 한창 때 150여 명의 짐꾼이 승객들과 함께 언덕 오르내리기를 하며 생계를 꾸려갔다. 때로는 어린애와 허약한 노인들을 지게로 져다주는 진풍경도 있었다.
겨울철 언덕길을 걸어 올라가고, 걸어내려 오려면 아주 미끄러웠다. 그럴 경우에는 신발 밑창에 네 개의 징을 박아 만든 지금의 아이젠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신발, ‘싸카’를 역전에서 대여해 주곤 했다.
그리고 그 손님들과 함께 올라가거나 내려와서 그것을 회수하여 가지고 그 역전에서 다시 기차를 기다렸다가 내리는 손님에게 대여해 주었다가 회수하는 방법을 썼다.
이러한 신발도 빌릴 형편이 못되는 사람들은 신발에 새끼줄을 감아 덜 미끄럽게 하여 이 언덕길을 오르내렸다.
강삭철도는 두레박식과 순환식이 있는데, 심포리~통리 구간에는 두레박식이 이용됐다. 심포리와 통리에 소규모의 조차장이 조성되어, 도착한 화물 열차를 한 량씩 분할하여 전용의 강삭차에 한 량씩 연결하여 올려 보내거나 내려보내고 이를 다시 조성하여 운행하였다.
1963년 5월 20일 10시에 주로 터널로 이루어진 8.5Km의 황지본선(통리~심포리 구간)이 개통되면서 강삭철도는 사라졌었는데, 요즘 관광상품으로 새롭게 개발되어 개장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심포역까지 타고 내려간 레일바이크를 다시 끌어올리는 한편, 사람들도 타고 오르내리며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한 번의 상전벽해 궁금해진다.
도도한 / 태백준령을 / 다시 한 번 만났다
삼척, 도계, 심포리를 / 거쳐온 숨찬 기차 // 급경사 통리고개 / 더 이상은 가지 못해 // 아득한 / 산기슭에선 / 주저앉고 싶어했다
- 졸시, 「통리고개」전문
심포리와 통리 구간에는 국내 유일의 강삭철도(鋼索鐵道, Cable-Railway)였던 로프형철도가 있었다. 스위치백 철도보다도 더 경사가 많이 진 경우에 만든 것이다.
국내 유일인 스위치백 구간과 국내 유일인 강삭철도 구간이 모두 도계와 통리 사이의 철길이었으니 국내의 이색적인 철도 모형을 모두 볼 수 있는 곳이 도계와 통리의 중간인 ‘심포리’였다.
강삭철도는 레일 위에 설치된 차량을 밧줄로 견인하여 운행하는 철도이다.
즉 물체가 매우 큰 경우 차량을 운전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로프에 차량을 팽팽하게 연결하고 권양기를 이용하여 쇠줄로 끌어올리는 방식이다. 종종 ‘인클라인 철도(Incline Railway)’ 또는 ‘케이블카(Cable Car)’로 불리기도 한다.
예전 사람들은 ‘강색선’, 또는 ‘마끼’라고 불렀다.
심포리와 통리 1.1Km 구간에는 1940년에 설치되어 1963년 5월 20일까지 운행되었다.
화물열차는 인크라인에 의해 한 번에 한 차량씩 끌어올렸지만 여객열차는 무거워 끌어올릴 수 없었다.
때문에 영주 쪽에서 오는 영동선 여객열차는 통리역이 종착역이었고, 강릉 쪽에서 오는 여객열차는 심포리역이 종착역이 되었다.
승객들은 통리역이나 심포리역에서 내려서 가파른 비탈길을 걸어 오르고, 걸어 내려와 다음역의 열차를 타야했다.
짐이 많은 이를 위해 짐꾼인 지게꾼이 등장하게 되었고, 한창 때 150여 명의 짐꾼이 승객들과 함께 언덕 오르내리기를 하며 생계를 꾸려갔다. 때로는 어린애와 허약한 노인들을 지게로 져다주는 진풍경도 있었다.
겨울철 언덕길을 걸어 올라가고, 걸어내려 오려면 아주 미끄러웠다. 그럴 경우에는 신발 밑창에 네 개의 징을 박아 만든 지금의 아이젠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신발, ‘싸카’를 역전에서 대여해 주곤 했다.
그리고 그 손님들과 함께 올라가거나 내려와서 그것을 회수하여 가지고 그 역전에서 다시 기차를 기다렸다가 내리는 손님에게 대여해 주었다가 회수하는 방법을 썼다.
이러한 신발도 빌릴 형편이 못되는 사람들은 신발에 새끼줄을 감아 덜 미끄럽게 하여 이 언덕길을 오르내렸다.
강삭철도는 두레박식과 순환식이 있는데, 심포리~통리 구간에는 두레박식이 이용됐다. 심포리와 통리에 소규모의 조차장이 조성되어, 도착한 화물 열차를 한 량씩 분할하여 전용의 강삭차에 한 량씩 연결하여 올려 보내거나 내려보내고 이를 다시 조성하여 운행하였다.
1963년 5월 20일 10시에 주로 터널로 이루어진 8.5Km의 황지본선(통리~심포리 구간)이 개통되면서 강삭철도는 사라졌었는데, 요즘 관광상품으로 새롭게 개발되어 개장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심포역까지 타고 내려간 레일바이크를 다시 끌어올리는 한편, 사람들도 타고 오르내리며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한 번의 상전벽해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