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연필통 속 페이퍼 나이프

연필통 속 페이퍼 나이프

by 운영자 2014.09.25

아파트 창문 밖 하늘에 뭉게구름이 핀다. 나는 뒷베란다로 나가 창문 밖 하늘을 쳐다봤다. 무역센터 쪽 하늘에서 희고 부드러운 뭉게구름이 일어난다.볼수록 텅 빈 마음이 가득가득 차오른다. 가을이다. 가을이 만들어주는 선물 중에 뭉게구름만한 선물이 또 있을까.

뭉게뭉게 피는 구름을 보려니 누군가가 그립다. 방에 들어와 책상 의자에 앉았다. 여태 내 눈에 보이지 않던 페이퍼 나이프가 들어온다. 책상 앞 연필통에 꽂혀있는 편지봉투를 여는 나무칼이다.

기룸한 나무칼 자루 끝에 기린의 머리를 조각한 수공품이다. ‘MADE IN KENYA’라는 표딱지가 나무빛깔로 물든 채 붙어있다. 20여 년 전 아프리카 토산품 전에서 사온 기억이 있다.

그때만 해도 나는 자주 편지를 썼다. 안부가 목마른 지인에게, 어머니에게, 문단의 동료나 선배들에게 종종 편지를 했다. 어쩌면 이 페이퍼 나이프도 그 무렵에 산 것인지 모르겠다.

편지 봉투를 손으로 찢어 여는 것이 싫었다. 편지에 대한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페이퍼 나이프를 대면 반듯하게 열 수 있다.

보내는 분의 마음만큼 열어보는 나의 경건한 자세를 갖고 싶었다. 편지란 보낸 분의 숨결이 배어있는 인격체나 다름없다. 인격체를 대하는 듯한 공경함이 있어야 글 쓴 분의 심중을 오해 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

손으로 쓴 편지의 교류에는 그런 향기가 있었다. 사람을 존중하고, 인품을 높이고, 서로의 삶을 경외하거나 그리움을 고무하는 아름다움. 내가 한 때 즐겨 쓰던 편지의 필기용구는 먹을 갈아 쓰는 붓이었다.

어릴 적 어머니에게 배운 대로 내겐 먹이 불편하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휴대폰이 생기면서부터 편지 쓰는 일이 뜸해졌다. 그러나 출판한 시집을 보내주는 분에게는 그 고충을 알기에 감사의 편지를 꼭 드렸다.

처음엔 봉함편지를 사용했다. 그러던 것이 글자수가 적은 엽서로, 글씨도 붓 대신 먹물 느낌이 나는 수성 펜으로 바뀌었다. 그와 동시에 연필통 속에 꽂힌 페이퍼 나이프도 내 손에서 점점 멀어져갔다.

세상의 모든 것이 이메일이나 휴대폰의 문자 메시지처럼 신속하고 간편해져 갈 때다. 뜻밖에도 놀라운 책 한 권을 구했다. 화가 김점선의 글과 그림이 실린 책 <바보들은 이렇게 묻는다>였다. 제책 방식이 독특했다.

겹쳐진 페이지를 찢어가며 읽는 책이었다. 나는 책에 딸려있는 플라스틱 나이프 대신 내 필통에 꽂힌 목제 기린 나이프로 그 일을 하며 책을 읽었다.

읽는다기보다 천천히 음미한다는 말이 옳았다. 책장을 페이퍼 나이프로 자를 때마다 활짝 드러나는 김점선 특유의 어눌한, 아니 틱틱거리는 듯 한 화법과 그의 원색에 가까운 컴퓨터 그래픽. 그리고 책장을 자를 때 생기는 종이 보풀과 그 보풀이 쌓여 끝부분만 두툼해지는 책의 질감이 정겨웠다. 그 정겨움의 배후엔 물론 페이퍼 나이프가 있었다.

나는 연필통에서 잠자는 페이퍼 나이프를 꺼내들었다. 그 순간이다.

나이프에 감염된 듯 그 누군가를 향해 편지를 쓰고 싶다는 마음이 일었다. 책장 깊숙이 넣어둔 벼루를 꺼냈다.

물 한 모금을 따르고 천천히 먹을 갈았다. 세상일에 지쳤는지 감감하게 사시는 선배시인에게 뭉게구름을 적어 보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