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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늘 발뒤꿈치 들고 보는

고향, 늘 발뒤꿈치 들고 보는

by 운영자 2014.09.29

삶의 내피 파고드는 / 소소리 바람 한 점 감나무 사이로 난 / 그 푸른 하늘길 가듯
상큼한 / 추임새 모아 / 가을하늘 높이고
세월이 서걱이는 / 그 건널목 길모퉁이
뜨거운 용암으로 / 가슴속을 흘러내리는
그대 안 / 실핏줄 같은 / 그리움이 타고 있는
- 졸시 「타는 그리움」 전문

인간에게 고향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오늘날과 같은 후기 산업사회 구조에서는 산업사회의 전통적인 생활공간의 파괴로 수동적으로 실향하게 된 사람들과 이향한 사람들이 많다.

때문에 현대사회에서는 고향파괴, 고향상실, 그리고 탈고향의 현상이 보편적으로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런 고향이탈의 과정에서 인간은 공간적이고 지정학적인 고향, 즉 근원적 삶의 공간으로서의 고향만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식, 그리고 자기동질성, 존재와 삶의 근원까지도 망각 내지 상실할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때문에 현대인에게는 더 절실하게 고향의식이 대두되고 있고 문학에도 많이 반영되고 있다.

한국의 현대문학에서도 고향을 소재나 주제로 다루고 있는 작품이 많다. 한국현대문학 속에서의 고향상실은 민족사와도 관련이 깊은데 이것은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고향을 등지는 유이민이 많이 생겼기 때문이다.

일본인 농장기업가와 여타의 일본인 토지매매업자들의 횡포 때문에 그 시기 조선경제의 가장 중요한 토대를 이루는 농업경제 부문은 여지없이 파괴되었으며, 그 결과 1920년대에 들어서는 무수한 이농민들이 속출하게 되었고, 이들은 만주, 시베리아, 일본, 멕시코, 하와이 등지의 국외 유이민이 되었고, 국내에서도 유랑하게 되었다.

8.15 해방 후의 현대사회에서는 남북 분단, 전쟁, 혁명, 가난, 독재, 민주화 등 정치적 변혁과 산업화를 거치면서 급격히 사회가 변동되었다.

6.25전쟁으로 인한 분단에서 자기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는 실향민과 이산가족도 생겼으며, 또 산업화 이후 우리의 생활터전이었던 농촌을 떠나 도시로 이주하는 사람이 부쩍 늘어났고 그 때문에 공간적·정신적 고향상실감을 느끼고 고향에 대한 향수, 사향 등이 문학작품에 많이 반영되었다.

“향수란 원래 고향에 대한 사모이지만, 그 고향이란 반드시 유형임을 요하지는 않는다.”라는 최재서의 말처럼, 우리는 무형의 정신적 안식처를 고향이란 어휘에서 생각할 수 있다.

또 고향세계는 모든 인간과 모든 인간 공동체를 둘러싸고 있는 친척 및 이웃 같은 절친한 사람들과 아는 사람들의 영역이다.

“고향의 의식적이고 형이상학적 측면을 볼 때 그 고향의 본질은 불변하고, 또 그것은 자연적 공간만이 아닌 것이다.”라는 훗설의 정의와 “고향은 양식을 공급하는 토양이고, 심미적 희열의 대상이며, 정신적인 뿌리감정”이라는 슈프랑어의 정의와 “고향은 인격이 태어나고 자라고 또 일반적으로 계속 집으로 가지고 있는 삶의 영역이다.

고향은 그에게서 부모와 자식, 형제자매 등과 같은 가족 내에서의 친밀한 인간관계들과 함께 시작된다.

이 요소 외에 고향은 마을과 같은 공간적인 차원과 또 전통 같은 시간적인 차원을 지니고 있다”라고 볼노프는 말하고 있다.

그래서 인간은 늘 고향을 그리워하고, 늘 발뒤꿈치 들고 보는 곳이 아닐까? 그 이유는 익숙해진 것에 대한 향수가 모든 인간에게 있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