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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틴 그리고 카르페 디엠

캡틴 그리고 카르페 디엠

by 운영자 2014.10.22

지난 8월, 한 할리우드 배우의 갑작스러운 소식을 들었다.로빈 윌리엄스(Robin Williams)의 사망! 그러고 보니 최근 몇 년 사이에 스크린에서 그를 볼 수 없었는데, 까마득히 잊고 지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는데,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로 추정되고, 알코올 중독 치료를 받아왔다는 것을 보면, 그동안 무척 힘들게 살아왔음을 짐작할 수 있다.

로빈 윌리엄스, 그를 생각하면 무엇보다 먼저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Dead Poets Society)>(1989)가 떠오른다.

그 영화는 우리나라에 참 시기적절하게 들어왔다. 당시는 독재정권 아래서 교육민주화 운동이 벌어질 때였다.

수많은 교사들이 참교육 실현을 외치며 정권과 싸우던 시절이라 영화의 줄거리가 남의 이야기 같지 않았다.

<죽은 시인의 사회>의 배경은 미국의 한 고등학교이다. 이 학교는 전통과 명예, 규율을 중시하고 명문대 진학을 지상의 목표로 삼고 있는데, 여기에 모교 출신 키팅(John Keating) 선생이 부임해온다.

그의 수업은 남다른 데가 있다. 학생들을 교실에 앉혀놓고 교과서만 설명하는 게 아니라 교정을 데리고 다니며 함께 보고 느끼며 공감하는 수업을 진행한다.

‘카르페 디엠(Carpe Diem)’이란 말을 알려주고,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아이에게 용기와 자신감을 갖게 하며, 전통과 규율에 길들여지는 아이들에게 자아를 찾고, 전통에 도전할 것을 강조한다.

그리하여 고리타분한 내용을 담은 교과서를 뜯어내게 하는가 하면, 아이들을 책상 위로 올라서게 하여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라고 역설한다.

그는 또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모임을 소개한다. 그것은 자신이 학창시절에 몸담았던 동아리로 동굴에 모여앉아 문학작품을 읽는 모임이었다.

선생님의 이야기에 자극을 받은 학생들은 동아리를 다시 조직한다. 그리고 야간에 기숙사를 빠져나가 동굴 속에서 자기들만의 시간을 가지며 자유와 낭만을 만끽한다.

이와 같은 키팅 선생의 파격적인 교육 방식은 곧 보수적인 학교장의 눈에 나게 되고, 결국 학교에서 쫓겨난다. 그가 교실을 떠나는 날, 그를 따르던 아이들은 모두 책상 위에 올라가 선생님을 외친다.

“캡틴! 오 마이 캡틴!”

영화를 본 지도 어느덧 25년이 지났다. 그런데 아직도 뇌리에 선명하게 박혀 있는 두 낱말이 있다. 바로 ‘캡틴’이라는 말과 ‘카르페 디엠’이라는 말이다.

학생들은 키팅 선생님에게 ‘캡틴’이란 호칭을 쓴다. 이것은 본디 배의 선장이나 군대의 지휘관을 가리키는 말이 아닌가.

그런데도 선생님을 이렇게 부르는 것은 일반 선생님과는 다른, 키팅 선생님에 대한 호감과 친밀감, 존경스러움을 담은 표현이라고 하겠다.

그리고 ‘오늘을 살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카르페 디엠’은 영어의 ‘오늘을 붙잡아라(Seize the day)’와 같은 말인데, ‘현실에 충실하라!’ 또는 ‘현재를 즐겨라!’의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자유로운 사고를 하라!’, ‘관습에 순응하지 말고 도전하라!’는 키팅 선생님의 열린 교육관이 여기에 함축되어 있다고 본다.

사실 이 영화의 제목인 ‘죽은 시인의 사회’는 잘못된 번역이다. 문학 동아리 명칭인 만큼 ‘죽은 시인들의 모임’ 또는 ‘죽은 시인들의 동아리’로 옮겨야 하는데, ‘society’를 곧이곧대로 번역함으로써 요령부득인 제목이 되고 말았다.

그렇지만 그게 무슨 대수이랴. 떠나는 키팅 선생님을 향해 교장선생님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책상 위로 올라설 때의 뭉클함이란! 바로 교육의 승리를 확인하는 순간이 아니었던가!

이 영화가 나올 무렵, 나는 교직 경력이 10년째 되어가는 서른 중반의 교사였다.

영화를 보며 나는 참 부끄러웠다. 교사라면 저 정도의 열정과 능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하는데, 나는 왜 키팅 선생처럼 아이들의 가슴을 뜨겁게 달궈주는 교사가 되지 못할까?

어찌하여 그들의 가슴 속에 파고들어가 자유와 낭만의 숨결을 불어넣어주지 못하고, 알량한 교과서의 지식만 전달하는 약장수 노릇만 하고 있을까?

그래도 부족하게나마 내가 대학입시에 목을 매단 고등학교에서 학생 글쓰기 모임을 결성하여 문집을 만들어내고, 그들이 학교축제 때 <죽은 시인의 사회>를 연극으로 보여준 것들은 작은 반성의 결과가 아니었나 싶다.

어떤 교육이 참교육이며, 어떤 교사가 참교사인가를 보여준 로빈 윌리엄스! 예순셋 아까운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지만, 그가 연기한 키팅 선생님은 바람직한 교사의 표상으로 내 가슴에 오래도록 살아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