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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것이 힘인가, 모르는 게 약인가

아는 것이 힘인가, 모르는 게 약인가

by 운영자 2014.11.24

나는 가끔 집에서 한가할 때면 속담사전을 뒤적이곤 한다.속담을 알아두면 말을 하거나 글을 쓸 때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기도 하지만 그보다도 우선 그 촌철살인의 표현이 재미있다. 짤막한 문장 속에 재치와 해학이 담겨 있고, 삶의 지혜와 교훈이 배어 있다.

그래서 한 번 책을 펼쳤다 하면 얼른 덮지 못하고 계속 빠져들곤 한다.

속담은 예전부터 민간에 전승되어 온 관용적인 표현으로 격언과 닮은꼴이다.

속담이 구체적 사례를 통한 비유적인 표현이라면, 격언은 보편적 관념을 그대로 진술하는 특징이 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나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속담이고, ‘침묵은 금이고 웅변은 은이다’나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고 길다’는 격언에 속한다.

이들은 오랜 세월 민중의 생활체험에서 우러나온 까닭에 조상들의 정서와 가치관이 녹아 있다.

그런데 속담이나 격언을 보면 서로 상반된 의미를 지닌 것들이 많다.

예컨대 ‘올라갈 수 없는 나무는 쳐다보지도 마라’와 ‘열 번 찍어 안 넘어갈 나무가 없다’는 둘 다 일리가 있는 말이지만 세상사에 대처하는 자세가 완전히 정반대인 것을 알 수 있다.

‘빛 좋은 개살구’라는 속담과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도 겉모습과 실속을 두고 따지는 관점이 다르다.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라’와 ‘쇠뿔도 단김에 빼라’도 일을 신중하게 할 것이냐 신속하게 할 것이냐에 비중의 차이를 보인다.

이밖에도 가까운 이웃이 먼 친척보다 낫다는 뜻을 가진 ‘이웃사촌’과 혈연의 정을 강조한 ‘피는 물보다 진하다’도 상이한 뜻을 가진 것을 볼 수 있다. 노년기의 사람들이 자주 입에 올리는 ‘역시 나이는 못 속여’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할 뿐’이라는 말도 마찬가지다.

이와 같이 속담과 격언들은 서로 모순된 뜻을 드러내면서도 나름대로 진실성을 갖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만큼 세상일이라는 것이 복잡다단하고 한 마디로 규정짓기 어렵다는 증좌가 아니겠는가.

나는 상반된 속담과 격언을 견주어보면서 우리의 삶을 다시 한 번 돌아보곤 한다.

이를테면 ‘아는 것이 힘이다’와 ‘모르는 게 약이다’와 같은 격언이 우리 생활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세상만사가 많이 알수록 좋다고 생각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예를 들면 법률가가 헌법 조항에 대해서 널리 꿰고 있다든지, 의사가 의학 지식에 통달한다든지, 학자가 전공 분야에 해박한 지식을 갖는 것은 대단히 바람직한 일이다.

학생들이 머리를 싸매고 책과 씨름을 하는 것도 결국은 많이 알기 위해서가 아닌가.

이와 반대로 많이 알아서 좋지 않은 경우도 허다하다.

우선 남의 약점이나 비밀 같은 것은 많이 알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알아봤자 험담이나 하게 되지 내 생활에 별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이다.

남의 속마음 같은 것도 환히 아는 것보다는 잘 모르는 게 오히려 낫지 않나 싶다.

“그대 마음 알 수가 없어. 날 좋아하는지 날 사랑하는지 알려주면 안 돼요?” 이렇게 노래하는 청춘남녀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인간에게 독심술(讀心術)이 있다면 아무래도 세상이 더 삭막해질 것 같다.

남의 속내를 유리상자 들여다보듯 꿰뚫어 볼 수 있다면 저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지 미워하는지 빤히 보이므로 아군과 적군이 극명하게 갈릴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아군과는 가까이 지내지만 적군과는 한없이 멀어지고 말지 않겠는가.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미래에 대해 궁금증을 갖는다. 나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내가 하려는 일이 성공할까, 실패할까? 그래서 일찍이 점성술이 생겨났고, 문명시대인 오늘날까지도 사주를 보고 점을 치는 사람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그렇지만 자기의 앞날을 모르고 사는 것도 좋은 일이 아닌가 생각된다. 우리가 영화를 볼 때 줄거리를 알고 보면 흥이 나지 않는 까닭이 무엇인가.

나의 미래가 어떻게 전개될지 환히 알고 살아간다면 결말을 알고 영화를 보는 것처럼 재미가 없지 않겠는가. 생각해보라! 내가 한 달 뒤 또는 일 년 뒤에 죽을지 미리 안다면 그 때까지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우울하고 고통스럽겠는가?

내일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꿈을 꿀 수 있고, 희망을 품을 수 있다. 미래가 안개에 덮여 있는 까닭에 판도라의 상자를 가슴에 안고 잘해보려고 노력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앞날을 모르고 살아간다는 것은 인생의 축복이라 할 만하다.

‘모르는 게 약’이란 말이 항상 맞는 것은 아니지만, 때에 따라서는 타당한 경우가 있어 선인들의 지혜에 고개가 끄덕여지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