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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과 능수버들

‘수능’과 능수버들

by 운영자 2014.12.01

대한민국의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은 인생을 결정한다. 그러나 수능은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는 능력 정도를 평가하는 시험에 지나지 않지만, 대한민국의 수능은 인생 전체를 결정할 만큼 파괴력이 크다.한 번의 시험으로 인생을 결정하는 사회는 분명 후진국이다. 그래서 대한민국은 지금과 같은 수능이 존재하는 한 결코 선진국으로 성장할 수 없다.

수능으로 인생을 결정하는 사회는 창조적인 인간을 양성할 수 없고, 창조적인 인간을 양성하지 못하는 교육제도를 가진 국가는 선진국으로 성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수능을 뒤집으면 능수이다. 나는 수능의 앞날을 버드나뭇과의 능수버들과 관련해서 생각한다. 수능은 다양한 사고를 가진 학생들을 선발할 수 없다.

다양한 사고는 부드러운 생각에서 출발한다. 능수버들의 ‘능수’는 가지가 밑으로 처진 모습을 나타내는 접두어이다.

장미과의 능수벚나무와 콩과의 능수회회나무도 능수버들과 같은 뜻의 나무 이름이다.

버드나무의 장점은 물을 좋아하면서 아주 부드럽다는 점이다. 버드나무의 부드러운 성질 때문에 이 나무는 어떤 조건에서도 잘 살아남는 강한 생명력을 가진 존재로 평가받고 있다. 그래서 이별할 때 버드나무 가지를 꺾어주던 풍속이 있었다.

능수버들의 장점은 버드나무와 같은 부드러움은 물론 처진 가지가 아주 멋스럽다는 점이다. 능수버들은 가지가 처친 덕분에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우리나라 수능 응시자들의 어깨는 능수버들처럼 처졌지만 오히려 애처롭다.

능수버들처럼 처진 가지가 아름다운 것은 본성을 잘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의 목적도 한 개인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는 데 있지만, 수능은 오히려 학생들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방해한다.

교육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기회의 균등이 중요하다. 그러나 수능은 기회의 균등은커녕 희망을 박탈한다.

특히 사교육비를 줄인다는 명분으로 실시하고 있는 EBS와 연계한 수능은 최악의 선택이다. ‘주입식 교육’의 전형이기 때문이다.

방송 내용을 열심히 공부하면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다는 사고방식 자체가 교육 목적에 대한 일종의 테러이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수능이 결정한다. 어떤 수능을 통해 학생을 선발하느냐에 따라 대한민국의 미래가 달려 있기 때문이다. 한국처럼 지하자원이 거의 없는 국가에서는 훌륭한 인재양성만이 살길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교육은 중진국까지 진입하는 데는 효과적이었을지 몰라도 결코 선진국으로 갈 수 있는 방식이 아니다.

이제 한국 교육은 기로에 섰다. 이 시점에서 새로운 교육제도를 선택하지 않으면 미래는 어둡다. 새로운 교육제도는 학생들의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제도이다.

그러나 학생들의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교육제도는 하루 아침에 만들 수 없다. 그 과정에서 엄청난 진통과 고통을 수반한다. 고통과 진통은 이해 당사자들 간의 대화와 소통을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다.

이처럼 새로운 교육 제도를 구축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교육혁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