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by 운영자 2014.12.09
이른 강추위가 몰아친 아침, 고향의 부모님께 안부전화를 한다.전화를 받는 사람은 늘 아버지가 아니라 어머니다.
나도 그렇지만 어렸을 때부터 중이염을 앓아온 아버지는 청력이 많이 떨어져 소리를 듣는데 어려움이 많다.
그래서 함께 계시는 어머니는 가끔씩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그것이 또 다른 사랑법이라 믿지만. 물론 어머니도 그 전화를 받는데 시간이 걸린다.
거동이 불편하셔서 전화기까지 오는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드라마 제목같기도 하지만 ‘고향집 전화기는 언제나 오래 울린다’.
우리 세대 여느 부모들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특히 아버지는 다리에 힘이 없어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데 시간도 걸리고 힘들어한다.
영특했지만 가난과 형제들 뒷바라지에 평생 농군이 되었던 아버지는 그 지난한 세월을 들판과 노동의 현장에서 살아왔다.
머언 기억을 떠올리면 아버지는 늘 지게를 지거나 들판에서 일을 하는 모습이 제일 먼저다.
내가 초등학교 때 쯤 이었을까. 지금도 기억에 생생한 가슴아픈 사연 하나는 아버지가 사방공사에 품팔러 갔다가 손가락을 다쳤지만 형편상 치료를 못해 끝내 오른쪽 가운뎃손가락이 굽어버린 것이다.
그런 손으로 아버지는 농부의 길을 지금껏 걸어왔다. 그 고통과 심정을 어찌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마는 그냥 마음이 쓰리고 아플뿐이다.
얼마전 고향의 부모님을 모시고 작은 추억여행을 다녀왔다. 2박 3일동안 전라도를 한바퀴 돌았으니 아마 천리길도 넘었으리라.
고향인 익산을 떠나 군산-부안-고창-해남-강진-장흥-보성-순천-화순-담양-순창-임실-전주를 돌아오는 여정을 두 형제가 부모님과 함께 했다.
두 분 다 거동이 불편하여 힘들어했지만 자식들과의 여행이 즐거운지 내내 좋아하셨다.
어머니도 그렇지만 아버지는 더 힘들어하셔서 여행 내내 아들과 아버지가 한 몸이 되어 또 다른 아버지가 된 듯 호흡을 맞추었다.
어렸을 적 ‘아버지는 힘이 세구나’하며 신기해했던, 산더미같은 볏짚 지게도 끄떡없이 짊어지던 그 아버지가 이제 걸음걸이도 힘들어 하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아려왔다.
세월은 쉼없이 흘러갈 것이고 언젠가 나도 ‘저 아버지’가 될 것이다. 그리고 나 또한 딸아이랑 이런 애틋한 여행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삶이란 이런 것이라 여기면 그만일지 몰라도 아버지를 생각하면 늘 마음 한 구석이 헛헛하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런 느낌들 때문에 아버지의 진한 사랑의 끈이 나에게 이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비록 몸은 세월속에서 약해지고 낡아가지만 자식을 향한 사랑과 응원의 힘은 강해지고 있음을 안다.
그 거친 삶을 잘 견뎌오셨음에, 그리고 이렇게 제 곁에 살아계셔 주심에 그저 따뜻한 감사의 눈물을 담아 박수를 보내드린다.
사랑하는 아버지를 만나 행복했다고 귓속말로 속삭이고 싶다. 잘 들리지 않을지 모르지만 아버지가 마음의 귀를 열고 끄덕끄덕 하실거라 믿는다.
그렇죠? 아버지!~
나도 그렇지만 어렸을 때부터 중이염을 앓아온 아버지는 청력이 많이 떨어져 소리를 듣는데 어려움이 많다.
그래서 함께 계시는 어머니는 가끔씩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그것이 또 다른 사랑법이라 믿지만. 물론 어머니도 그 전화를 받는데 시간이 걸린다.
거동이 불편하셔서 전화기까지 오는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드라마 제목같기도 하지만 ‘고향집 전화기는 언제나 오래 울린다’.
우리 세대 여느 부모들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특히 아버지는 다리에 힘이 없어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데 시간도 걸리고 힘들어한다.
영특했지만 가난과 형제들 뒷바라지에 평생 농군이 되었던 아버지는 그 지난한 세월을 들판과 노동의 현장에서 살아왔다.
머언 기억을 떠올리면 아버지는 늘 지게를 지거나 들판에서 일을 하는 모습이 제일 먼저다.
내가 초등학교 때 쯤 이었을까. 지금도 기억에 생생한 가슴아픈 사연 하나는 아버지가 사방공사에 품팔러 갔다가 손가락을 다쳤지만 형편상 치료를 못해 끝내 오른쪽 가운뎃손가락이 굽어버린 것이다.
그런 손으로 아버지는 농부의 길을 지금껏 걸어왔다. 그 고통과 심정을 어찌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마는 그냥 마음이 쓰리고 아플뿐이다.
얼마전 고향의 부모님을 모시고 작은 추억여행을 다녀왔다. 2박 3일동안 전라도를 한바퀴 돌았으니 아마 천리길도 넘었으리라.
고향인 익산을 떠나 군산-부안-고창-해남-강진-장흥-보성-순천-화순-담양-순창-임실-전주를 돌아오는 여정을 두 형제가 부모님과 함께 했다.
두 분 다 거동이 불편하여 힘들어했지만 자식들과의 여행이 즐거운지 내내 좋아하셨다.
어머니도 그렇지만 아버지는 더 힘들어하셔서 여행 내내 아들과 아버지가 한 몸이 되어 또 다른 아버지가 된 듯 호흡을 맞추었다.
어렸을 적 ‘아버지는 힘이 세구나’하며 신기해했던, 산더미같은 볏짚 지게도 끄떡없이 짊어지던 그 아버지가 이제 걸음걸이도 힘들어 하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아려왔다.
세월은 쉼없이 흘러갈 것이고 언젠가 나도 ‘저 아버지’가 될 것이다. 그리고 나 또한 딸아이랑 이런 애틋한 여행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삶이란 이런 것이라 여기면 그만일지 몰라도 아버지를 생각하면 늘 마음 한 구석이 헛헛하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런 느낌들 때문에 아버지의 진한 사랑의 끈이 나에게 이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비록 몸은 세월속에서 약해지고 낡아가지만 자식을 향한 사랑과 응원의 힘은 강해지고 있음을 안다.
그 거친 삶을 잘 견뎌오셨음에, 그리고 이렇게 제 곁에 살아계셔 주심에 그저 따뜻한 감사의 눈물을 담아 박수를 보내드린다.
사랑하는 아버지를 만나 행복했다고 귓속말로 속삭이고 싶다. 잘 들리지 않을지 모르지만 아버지가 마음의 귀를 열고 끄덕끄덕 하실거라 믿는다.
그렇죠?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