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덩달아 춤을 추고 싶다
나도 덩달아 춤을 추고 싶다
by 운영자 2014.12.31
여러 해 전 남쪽 끝에 있는 한 교회를 찾아가 말씀을 나눈 일이 있습니다. 잘 아는 후배 목사가 섬기고 있던 교회였지요.둘째 날이었던가요, 점심을 먹고 쉬는 시간에 후배와 길을 나섰습니다.
살아가며 마음이 답답하고 힘들 때면 자신이 찾아가는 곳이 있는데 그 곳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습니다.
어떤 곳이기에 마음 힘들고 답답할 때 찾아가는 것일까, 궁금한 마음으로 길을 따라 나섰지요.
후배와 찾아간 곳은 남단의 바다와 섬이 그림처럼 어울리는, 그 아름다운 경치가 한 눈에 들어오는 언덕 위였습니다.
바둑돌 같기도 하고 장독대 위의 항아리 같기도 한 아기자기한 섬들이 은물결 은하수처럼 반짝이는 바다와 그 사이를 지나가는 배들과 어쩜 그리도 잘 어울리던지, 언덕 위에 서서 그 모습을 바라보는데 나도 모르게 헤프다 싶을 만큼 감탄이 이어졌습니다.
이만한 곳을 찾는다면 얼마든지 마음이 시원해지겠구나 생각을 했는데, 아니었습니다.
마음이 힘들 때 후배가 찾는 곳은 빼어난 풍광을 바라볼 수 있는 조망대가 아니었습니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그 언덕 위엔 돌을 쌓아 만든 봉화대가 있었습니다.
위험한 일이 생기면 불을 피워 올려 다급한 상황을 알리는 봉화대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 언덕은 봉화대가 서기에도 가장 알맞은 곳이었습니다. 마음 답답하고 힘들 땐 그 봉화대 위로 올라가 무릎을 꿇는다고 했습니다.
봉화대에 올라 무릎을 꿇고 봉화를 피워 올리듯 드리는 기도, 세상에 그만한 기도가 어디 흔할까 싶은 생각에 울컥 눈시울이 뜨거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때 그 시간이 떠올랐던 것은 이 엄동설한에 굴뚝 위로 올라간 사람들 때문입니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이 70미터 굴뚝에 올라가 여기도 사람이 있다 외치고 있습니다.
한 겨울의 칼바람이 에는 까마득한 꼭대기, 거기야 말로 하늘로 향하는 봉화대 아닐까 싶었던 것이지요.
오늘 이 땅 이 시대가 피워 올리는 눈물의 봉화겠다 싶습니다. 제주도에 살고 있는 이효리 씨는 쌍용자동차에서 해직된 근로자들이 복직을 하는 날, 비키니 차림으로 춤을 추겠노라 했다고 합니다.
저는 이효리 씨를 웃는 모습이 참 선한 사람으로 기억합니다. 그는 어느 한 쪽만을 응원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쌍용자동차 회사에서 막 생산하기 시작한 신차가 많이 팔려서 회사도 잘 되고, 실직한 분들도 일자리로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었습니다.
겨울 지나 봄 돌아오듯 그런 날이 어서 왔으면 좋겠습니다. 서로를 불편하게 바라보았던 이들이 마음의 경계를 풀고 서로의 어깨를 걸고 덩실덩실 춤을 추는 그 시간이 말이지요.
벽이 무너져 서로가 서로를 형제로 가족으로 이웃으로 대하는 그 날 말입니다.
그 날이 찾아와 이효리 씨가 춤을 춘다면 꼭 비키니 차림 때문이 아니라 그 앞에서 얼마든지 마음으로는 같이 춤을 추고 싶습니다.
살아가며 마음이 답답하고 힘들 때면 자신이 찾아가는 곳이 있는데 그 곳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습니다.
어떤 곳이기에 마음 힘들고 답답할 때 찾아가는 것일까, 궁금한 마음으로 길을 따라 나섰지요.
후배와 찾아간 곳은 남단의 바다와 섬이 그림처럼 어울리는, 그 아름다운 경치가 한 눈에 들어오는 언덕 위였습니다.
바둑돌 같기도 하고 장독대 위의 항아리 같기도 한 아기자기한 섬들이 은물결 은하수처럼 반짝이는 바다와 그 사이를 지나가는 배들과 어쩜 그리도 잘 어울리던지, 언덕 위에 서서 그 모습을 바라보는데 나도 모르게 헤프다 싶을 만큼 감탄이 이어졌습니다.
이만한 곳을 찾는다면 얼마든지 마음이 시원해지겠구나 생각을 했는데, 아니었습니다.
마음이 힘들 때 후배가 찾는 곳은 빼어난 풍광을 바라볼 수 있는 조망대가 아니었습니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그 언덕 위엔 돌을 쌓아 만든 봉화대가 있었습니다.
위험한 일이 생기면 불을 피워 올려 다급한 상황을 알리는 봉화대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 언덕은 봉화대가 서기에도 가장 알맞은 곳이었습니다. 마음 답답하고 힘들 땐 그 봉화대 위로 올라가 무릎을 꿇는다고 했습니다.
봉화대에 올라 무릎을 꿇고 봉화를 피워 올리듯 드리는 기도, 세상에 그만한 기도가 어디 흔할까 싶은 생각에 울컥 눈시울이 뜨거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때 그 시간이 떠올랐던 것은 이 엄동설한에 굴뚝 위로 올라간 사람들 때문입니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이 70미터 굴뚝에 올라가 여기도 사람이 있다 외치고 있습니다.
한 겨울의 칼바람이 에는 까마득한 꼭대기, 거기야 말로 하늘로 향하는 봉화대 아닐까 싶었던 것이지요.
오늘 이 땅 이 시대가 피워 올리는 눈물의 봉화겠다 싶습니다. 제주도에 살고 있는 이효리 씨는 쌍용자동차에서 해직된 근로자들이 복직을 하는 날, 비키니 차림으로 춤을 추겠노라 했다고 합니다.
저는 이효리 씨를 웃는 모습이 참 선한 사람으로 기억합니다. 그는 어느 한 쪽만을 응원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쌍용자동차 회사에서 막 생산하기 시작한 신차가 많이 팔려서 회사도 잘 되고, 실직한 분들도 일자리로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었습니다.
겨울 지나 봄 돌아오듯 그런 날이 어서 왔으면 좋겠습니다. 서로를 불편하게 바라보았던 이들이 마음의 경계를 풀고 서로의 어깨를 걸고 덩실덩실 춤을 추는 그 시간이 말이지요.
벽이 무너져 서로가 서로를 형제로 가족으로 이웃으로 대하는 그 날 말입니다.
그 날이 찾아와 이효리 씨가 춤을 춘다면 꼭 비키니 차림 때문이 아니라 그 앞에서 얼마든지 마음으로는 같이 춤을 추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