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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다해 사랑한다는 것

마음을 다해 사랑한다는 것

by 운영자 2015.01.07

오래 전 일이네요, 당시만 해도 시간이 될 때면 함께 지내는 젊은이들과 찻집에 둘러앉아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는 했습니다.무엇 그리 나눌 이야기가 많았던 것일까요, 이야기를 하다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가고는 했지요.

누군가에게 내 이야기를 한다는 것, 누군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 어쩌면 그 자체가 소중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때 한 청년이 지나가듯이 한 이야기가 있는데, 30년 세월이 지난 지금도 그 말이 마음에 남아 있으니 이상한 일입니다.

그 청년은 ‘에피타프’(Epitaph)라는 노래를 좋아한다고 했습니다. 킹 크림슨이었던가요, 당시에는 ‘묘비명’이란 노래가 관심 있는 이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었는데, 가사도 그렇고 노래의 분위기도 그렇고 비장하게 다가오는 노래였습니다.

“예언자들이 새겨놓은 벽들이 금이 가고 있습니다. 죽음의 악기 위로 태양이 밝게 빛납니다. 모든 사람들이 악몽과 헛된 꿈으로 분열될 때 누구도 월계관을 갖지 못할 겁니다.

침묵이 절규를 삼켜 버리듯. 금가고 부수어진 길을 내가 기억할 때 혼란이 나의 묘비명이 될 겁니다. 우리가 그 일을 할 수 있다면 뒤에서 웃을 수 있으련만 울어야 할 내일이 두렵습니다.

운명의 철문 사이에 시간의 씨앗은 뿌려졌고 아는 자와 알려진 자들이 물을 주었습니다.

아무도 법을 지키지 않을 때 지식은 죽어갑니다. 모든 인간의 운명은 내가 볼 때 바보들의 손에 쥐어져 있습니다.”

음습하고 무겁게 느껴지는 노래를 젊은이가 좋아하는 것도 그랬지만, 그 청년의 말이 기억에 남은 것은 그 다음에 덧붙인 말 때문입니다. 그 노래를 정말로 좋아하기 때문에 일부러 그 노래가 담긴 테이프나 시디를 갖고 있지 않다고 했습니다.

어디선가 우연히 행운처럼 선물처럼 그 노래를 듣고 싶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좋아하는 것을 소유하는 대신 언제라도 가슴 떨리는 선물처럼 받고 싶다는 말이 참 인상적으로 남아 있습니다.

지난해 연말, 부산을 찾았다가 한 모임에 참석을 했는데 옆 자리에 앉은 이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만년필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는 만년필을 무척이나 사랑하는 이여서, 글씨를 쓸 때도 꼭 만년필로 쓴다고 했습니다. 글씨가 써진다고 모두가 똑같은 필기구는 아니겠지요. 각 사람에게는 자기 정서에 맞는 필기구가 따로 있을 것입니다.

나 또한 만년필과 연필을 좋아하기에 이내 그의 말을 공감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만년필을 내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만년필을 보여주며 하는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만년필을 사기 위하여 일 년 동안 돈을 모았다는 것입니다.

얼마든지 카드로 살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는 것은 왠지 만년필을 구하는 마음과는 거리가 있다 싶어 일부러 한 달 한 달 돈을 모았고, 그런 정성어린 준비와 기다림 끝에 마침내 만년필을 샀다는 것이었습니다.

부디 새해에는 마음을 다해 사랑할 수 있는 일들이 주어졌으면 좋겠습니다. 마음을 다해 사랑한다는 것은 단순히 좋아하는 것과는 사뭇 다른 일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