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관점을 바꿔라
자신의 관점을 바꿔라
by 운영자 2015.01.13
<벽암록>에 ‘담판한擔板漢’이라는 단어가 있다. 어떤 사람이 널따란 긴 나무판을 한 쪽 어깨에 짊어지고 가다보니, 반대편의 풍광을 보지 못하고, 한 쪽 면밖에 볼 수 없는 경우를 말한다.이 말의 속뜻은 한쪽만 바라보고, 다른 쪽의 의견이나 사상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어리석은 편견을 의미한다.
이 담판한에 대해 여러 측면에서 볼 수 있다. 자신의 학문 세계나 철학, 종교적 신념, 자신이 몸담고 있는 사회적인 관념 등 다양한 데서 발생한다. 이 담판한은 한 마디로 외골수의 편견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자신의 주관이나 관점이 뚜렷한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지나친 아집이나 자만심에서 형성된 주관이나 관점은 문제가 된다.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할 점은 다른 사람도 그 주관과 관념을 소중히 여긴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외골수적인 측면에서 잘 드러난 것이 종교적 신념이 아닐까 싶다. 한 나라 안에서도 종교 문제로 시끄러울 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다.
며칠전 프랑스 파리에서 이슬람교도들의 테러가 발생해 12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다.
테러를 당한 샤를리 엡도는 풍자 전문 주간지로서 몇 년전에도 이슬람 예언자 무함마드를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카툰을 실어 이슬람 극단주의들로부터 수여 차례 테러 위협을 받았다고 한다.
테러를 당한 날 샤를리 엡도는 오전에 트위터에 이라크의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의 지도자를 풍자하는 카툰을 올렸던 것이 테러의 화근이 되었다.
이슬람인들의 우상숭배 금지에 따른 사건은 자주 발생한다. 아프가니스탄의 바미안 석불石佛은 세계 최대다. 이 석불은 아프가니스탄 바미안 주의 힌두쿠시 산맥의 절벽 한 면을 파서 세워져 있었다.
6세기경에 조성되었으며 그리스 조형 미술의 영향을 받은 간다라 양식으로, 전세계 문화유산급이었다. 그 옛날 신라나 중국 구법승들이 서역을 지나 인도로 가는 길녘, 멀리에서도 바미안 석불이 보였다고 할 만큼 여러 기록에 등장한다.
그런데 2001년 국제사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슬람 원리주의를 내세운 탈레반 정권에 의해 로켓탄으로 석불을 파괴해버렸다.
그렇다면 한번쯤 재고해보자. 이슬람교에서는 무함마드를 그림으로 나타내는 것이 금기시되어 있다고 한다. 하지만 현대사회는 신문이나 출판에서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고, 이 또한 다양성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종교도 사람이 만든 철학의 일종이다(물론 이 말도 필자의 편견일 수 있다). 나의 철학과 상대방의 철학적 세계가 다르다고 내 관점으로 상대방을 해치거나 살상하는 것은 지독한 편견이요, 아집이다.
내가 믿는 종교가 우상숭배를 부정한다고 다른 종교, 출판이나 신문에서 표현하는 것조차 내 종교 관점으로 비판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자신의 종교와 다르다는 것, 자신의 사고관념과 다르다는 것은 상대방이 틀린 것이 아니라 ‘종교관의 차이’, ‘사유관념의 차이’일 뿐이다.
그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내 주장만을 내세우는 일은 어리석은 행동이다. 현대를 살아가면서 종교와 철학, 정치의 차이에서 발생되는 다양화를 받아들이는 아량과 지혜도 현대인의 필수 교양이 아닐까?
이 담판한에 대해 여러 측면에서 볼 수 있다. 자신의 학문 세계나 철학, 종교적 신념, 자신이 몸담고 있는 사회적인 관념 등 다양한 데서 발생한다. 이 담판한은 한 마디로 외골수의 편견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자신의 주관이나 관점이 뚜렷한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지나친 아집이나 자만심에서 형성된 주관이나 관점은 문제가 된다.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할 점은 다른 사람도 그 주관과 관념을 소중히 여긴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외골수적인 측면에서 잘 드러난 것이 종교적 신념이 아닐까 싶다. 한 나라 안에서도 종교 문제로 시끄러울 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다.
며칠전 프랑스 파리에서 이슬람교도들의 테러가 발생해 12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다.
테러를 당한 샤를리 엡도는 풍자 전문 주간지로서 몇 년전에도 이슬람 예언자 무함마드를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카툰을 실어 이슬람 극단주의들로부터 수여 차례 테러 위협을 받았다고 한다.
테러를 당한 날 샤를리 엡도는 오전에 트위터에 이라크의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의 지도자를 풍자하는 카툰을 올렸던 것이 테러의 화근이 되었다.
이슬람인들의 우상숭배 금지에 따른 사건은 자주 발생한다. 아프가니스탄의 바미안 석불石佛은 세계 최대다. 이 석불은 아프가니스탄 바미안 주의 힌두쿠시 산맥의 절벽 한 면을 파서 세워져 있었다.
6세기경에 조성되었으며 그리스 조형 미술의 영향을 받은 간다라 양식으로, 전세계 문화유산급이었다. 그 옛날 신라나 중국 구법승들이 서역을 지나 인도로 가는 길녘, 멀리에서도 바미안 석불이 보였다고 할 만큼 여러 기록에 등장한다.
그런데 2001년 국제사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슬람 원리주의를 내세운 탈레반 정권에 의해 로켓탄으로 석불을 파괴해버렸다.
그렇다면 한번쯤 재고해보자. 이슬람교에서는 무함마드를 그림으로 나타내는 것이 금기시되어 있다고 한다. 하지만 현대사회는 신문이나 출판에서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고, 이 또한 다양성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종교도 사람이 만든 철학의 일종이다(물론 이 말도 필자의 편견일 수 있다). 나의 철학과 상대방의 철학적 세계가 다르다고 내 관점으로 상대방을 해치거나 살상하는 것은 지독한 편견이요, 아집이다.
내가 믿는 종교가 우상숭배를 부정한다고 다른 종교, 출판이나 신문에서 표현하는 것조차 내 종교 관점으로 비판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자신의 종교와 다르다는 것, 자신의 사고관념과 다르다는 것은 상대방이 틀린 것이 아니라 ‘종교관의 차이’, ‘사유관념의 차이’일 뿐이다.
그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내 주장만을 내세우는 일은 어리석은 행동이다. 현대를 살아가면서 종교와 철학, 정치의 차이에서 발생되는 다양화를 받아들이는 아량과 지혜도 현대인의 필수 교양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