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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함과 착함을 옹호함

위함과 착함을 옹호함

by 운영자 2015.01.15

밥상머리에서 딸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다 언쟁을 하는 경우가 가끔 있다. 생각이 다른 것도 한 이유이지만 헤아려보면 아버지로서 아이를 ‘위해서’ 하는 이야기가 발단이 되는 경우가 많다.역설적이게도 딸아이를 ‘위하여’ 한 이야기가 아이의 귀에는 거슬리는 아이러니를 낳고 있는 것이다. 그런 말이 있다.

부모가 하는 이야기는 거의 대부분 잔소리이고 부모의 행동은 모두가 아이에게 피와 살이 된다고. 물론 위함을 내세운 부모의 욕심이 밴 사랑이 아이에게는 잔소리로 들릴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부모들의 이야기가 모두 잔소리로 폄하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이 땅의 부모들이 지금까지 자식들을 위하여 그 끝없는 위함의 사랑을 베풀어 온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누구를 위한다는 것은 조건없이 사랑을 베푼다는 것을 의미한다.

위함의 사랑은 싸구려 사랑이 범람하는 세상에 단연 돋보이는 가치로운 것이다. 80이 훨씬 넘은 부모가 우리 자식들에게 하는 이야기속에서 그 ‘위함’의 사랑이 물씬 풍겨나 마음이 따뜻해지는 경험을 엊그제 고향에서도 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위한다는 것은 어떤 것을 의미할까? 곰곰이 생각해본다.

그 전에 난데없이 위함을 떠올린다는 것 자체가 ‘위함’이 퇴색되거나 사라지고 있는 세상이라서 그런지 모른다. 앞만 보고 살아오다 보니 자신의 이익에만 골몰한 나머지 상대를 배려하거나 나누고 베푸는 데 인색한 세상이기에 진실된 ‘위함’이 더욱 소중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위함은 착함과 통한다. 오지랖넓은 삶을 살아오면서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가 나처럼 ‘그렇게 착하게 살면 밥 굶기 딱 맞다’는 것이다. 착하게 살면 세상사람들이 우습게 보고 아무렇게나 해도 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내 자신이 세상을 잘못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곤 했었다. 우는 아이 젖준다는 속담도 있으니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약삭빠르고 자신의 이익만을 쫓는 사람들만 존재한다면 세상은 어찌될 것인가.

언제부터인가 반갑게도 착하게 사는 사람들이 늘기 시작했다. 함께 사는 세상에서 상대를 이해하고 배려하지 않으면 상대는 물론 결국에는 자신이 불편하고 힘들어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아닐까 싶다.

말과 행동이 다른, 약속대로 실천하지 않는 지도자들이 비일비재하기에 착한 사람, 진심으로 위함을 실천하는 ‘진심어린’ 사람들을 주목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나만 착하면 뭐하나’가 아니라 ‘나라도 착해야 세상이 나아지지 않겠냐’는 인식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착함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자랑스러운 자산이자 세상에 희망을 만들어가는 행복콘텐츠이다. 이제 착함은 사업 낙오자의 무엇이 아니라 기업의 매출을 증대시키고 그 사람의 품격을 업그레이드하는 든든한 무기이다.

착함이 매도되고 배척당한 시대, 악화가 양화를 구축해 온 지난 날들은 언제가는 추억속에서나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러길 진심으로 바란다.

착함이 경쟁력이고, 세상을 행복하게 하는 선순환의 시작임을 다시 새긴다. 어라~ 이러는 내가 너무 자랑질 한 것은 아닌지 괜히 낮이 뜨거워진다. 아직 착한 사람이 아닌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