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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산행의 즐거움

겨울 산행의 즐거움

by 운영자 2015.01.26

겨울 산은 당당하다. 잎 떨어진 나무들 덕분에 속을 훤히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속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자존감이 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사람도 산에 들어가는 순간 신선(仙)으로 바뀔 수 있다. 신선을 의미하는 한자가 바로 사람(人)과 산(山)을 합한 글자이다.

산에 가면 신선놀음이다. 특히 겨울 산은 사람들이 적게 찾지만, 오히려 산의 묘미를 즐길 수 있는 장점을 갖고 있다.

겨울 산에 가서 가을에 떨어진 잎을 만나면 무척 즐겁다. 혹 어린아이들과 함께 낙엽에 들어가서 놀이를 하면 그 어떤 놀이기구보다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나는 몇 년 전 늦가을에 숲 해설가들과 함께 소위 울진 '보부상길'에 갔다. 우리나라에서 거의 유일하게 남아 있는 '보부상길'은 정말 귀한 문화재이다.

생존을 위해 힘든 길을 걸었던 당시 사람들의 삶을 생각하면서 걷다 보면 이 길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임을 깨닫는다.

나는 '보부상길'을 떠올릴 때마다 굴참나무와 신갈나무와 상수리나무의 잎에 누워서 하늘을 본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나는 그때 함께 간 사람들에게 모두 누워서 하늘을 보자고 했다.

그순간 내 목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모두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몸을 '잎 숲'에 맡겼다. 모두 동심으로 돌아가서 자연과 한 몸이 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나뭇잎에 누워 하늘을 보면 그 순간만은 모든 것을 잊어버린다.

하늘을 온몸으로 느끼면 가슴이 충만해서 벅차 눈물이 난다. 이처럼 나무이파리는 떨어져도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한다.

오늘도 간만에 집 근처 산에 올랐다. 상수리나무와 굴참나무의 잎들이 바람에 뒹군다. 길가의 잎들이 사람들의 발길에 닳아 반질반질하다. 자칫 발을 잘못 디디면 미끄러질 수도 있다.

잎을 밟고 위로 바라보니 나무는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심한 표정이다. 나는 이파리 하나에도 마음이 흔들리는데 나무는 늘 그런 모습이다.

그런 나무의 모습을 보니 문득 중국 당나라의 고승인 마조도일(馬祖道一)의 "일상이 곧 도"라는 구절이 떠오른다.

일상에서 행복을 찾는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그러나 나무를 보는 순간 매우 쉽다는 생각도 든다.

그저 자연에 맡기고 살다 보면 일상이 곧 행복이라는 것을 체득할 수 있을 것이다. 자연에 맡긴다는 것은 실제 자연과 함께 산다는 것이 아니라 자기 뜻대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도 자연이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연이지만, 점차 살아가면서 자연과 떨어져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인간은 애초부터 자연과 떨어질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기만 하면 일상에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

요즘 산행하다 보면 산악자전거동호회 회원들을 만난다. 나는 자전거를 산까지 가지고 와서 타는 모습을 좋아하지 않는다. 좁은 산길에 자전거를 가지고 와서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그들의 속마음을 알 수 없다.

그들은 산에 오면서 오로지 자신만 생각한다. 자신이 즐기는 것만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결코 더불어 행복할 수 없다. 회원들끼리는 아주 자랑스러운 모습으로 자전거를 타고 오르락내리락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긴장할 수밖에 없다.

산을 독점하는 순간 인간의 삶은 불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