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워요, 건망증
반가워요, 건망증
by 운영자 2015.02.04
어느 노부부가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남편이 아내에게 말했다.
“여보! 냉장고에서 우유하고 아이스크림 좀 갖다 줘요. 잊어먹을지도 모르니까 적어가지고 가요!”
아내가 일어서면서 대답했다.
“내가 치매라도 걸린 줄 알아요? 걱정 말아요!”
잠시 후 아내가 우유와 아이스크림은 안 가져오고 삶은 계란을 가지고 왔다.
남편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소금은 왜 안 가져왔어요? 그러니까 내가 적어가지고 가라고 했잖아!”
건망증에 관한 우스개다. 냉장고 물건도 제대로 꺼내오지 못하고, 방금 시킨 것을 잊어먹고 엉뚱한 소리를 할 정도면 이들 부부의 건망증은 상당히 중증이라고 하겠다.
다른 우스개로 건망증과 치매의 진단법을 알려주는 것도 있다.
남자가 소변을 보다가 “이걸 언제 써먹었더라?” 하면 건망증이고, “이게 어디에 쓰는 물건이지?” 하면 치매라고 한다. 또한 볼일을 보고 지퍼를 안 올리면 건망증이고, 지퍼를 안 내리고 볼일을 보면 치매라고 한다.
그리고 자기가 사는 집 주소를 잊어먹으면 건망증이고, 자기 집이 어디인지 모르면 치매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아내의 생일을 잊어먹으면 건망증이고, 아내의 얼굴을 잊어먹으면 치매라고 한다.
끝으로 자기의 망각증세를 걱정하고 있으면 건망증이고, 망각증세에 대해 아무 걱정이 없으면 치매라고 한다.
그냥 웃고 넘길 우스개가 아니라 정말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야기다.
나도 종종 깜빡할 때가 있다.
출근할 때 휴대전화를 안 가져가는 일은 다반사이고, 갑자기 내 주민등록번호나 전화번호가 생각나지 않을 때도 있다. 은행 계좌번호도 하나 외우고 있지만 막상 기재하려고 하면 번호가 앞뒤로 오락가락하여 혼선을 빚곤 한다.
무엇보다 당황스러운 것은 길거리에서 아는 이와 마주쳤는데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경우이다. “아, 누구!” 하며 시원하게 반가움을 표시하고 싶은데, 재깍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다. 한참 지나서야 “참, 누구였지!” 하지만 이미 기차는 떠난 뒤다.
건망증은 의학용어로 ‘단기 기억 장애’로 뇌의 검색 능력이 일시적으로 떨어지는 증세라고 한다. 인간의 뇌세포는 30세를 넘으면 감퇴하기 시작하므로 나이가 들수록 기억력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하겠다.
특히 긴장이나 압박감으로 인한 스트레스, 피로와 수면 부족, 미디어 중독 따위가 있으면 더 심해진다고 한다. 고혈압이나 당뇨 같은 만성질환도 건망증의 원인이라고 하니 조심할 일이다.
나도 한때는 텔레비전 퀴즈 프로그램을 보면서 출연자들보다 답을 먼저 맞히고는 “아유! 저것도 몰라?” 하며 열을 올리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대화를 하다가도 갑자기 어떤 낱말이 생각나지 않고, 드라마에서 배우 백일섭씨를 보고도 “저게 누구더라?”하고 한참 머리를 굴려야 하는 형편이니, ‘나도 다 됐구나!’ 하고 자괴감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내가 이것을 비관적으로 생각하느냐면 결코 그렇지는 않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말이 있듯이, 세상일은 마음먹기에 달렸기 때문이다. ‘자살’을 거꾸로 하면 ‘살자’가 되고, ‘불가능’의 뜻을 가진 ‘impossible’도 점 하나만 찍으면 ‘나는 할 수 있다(I’m possible)’가 된다.
‘희망이 아무 데도 없다’는 문장인 ‘Hope is no where’도 띄어쓰기만 달리 하면 ‘희망은 지금 여기에 있다(Hope is now here)’가 되지 않는가. 때로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니까 건망증도 노쇠 현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생각을 바꾸어 신의 은총으로 보면 어떨까? 자기 위안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한번 따져보자. 우리가 만약 자신이 겪은 일을 하나도 잊어먹지 않고 머리에 담고 지낸다면 어떻게 될까?
사람이 살아가는데 즐겁고 행복한 일만 있는가? 슬픈 일, 괴로운 일, 분한 일, 안타까운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누구와 다투거나, 무슨 사고를 당하거나, 시험에 떨어지거나, 아까운 물건을 잃어버리거나, 누구에게 속아서 손해를 입는 등 좋지 않은 일을 수없이 겪는 것이다.
그런 것들이 머리에 잔뜩 들어차 가지고 자꾸 떠오른다면 과연 마음이 편하겠는가. 나이가 들수록 기억의 분량도 많아질 텐데 그것들을 고스란히 머릿속에 쌓아둔다면 얼마나 힘들겠는가.
다행히 옷의 먼지를 털 듯, 세탁을 하듯 과거의 기억을 털어버릴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슬픔과 고통을 당하고도 시간의 경과와 더불어 마음의 평온과 웃음을 되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고 보면 우리가 의식하든 아니하든 지난 일을 망각할 수 있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건망증이 심해진다고 걱정하거나 슬퍼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의 축복을 받고 있다고 기뻐해야 하지 않겠는가.
반가워요, 건망증! 함께 놀아요, 건망증!
“여보! 냉장고에서 우유하고 아이스크림 좀 갖다 줘요. 잊어먹을지도 모르니까 적어가지고 가요!”
아내가 일어서면서 대답했다.
“내가 치매라도 걸린 줄 알아요? 걱정 말아요!”
잠시 후 아내가 우유와 아이스크림은 안 가져오고 삶은 계란을 가지고 왔다.
남편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소금은 왜 안 가져왔어요? 그러니까 내가 적어가지고 가라고 했잖아!”
건망증에 관한 우스개다. 냉장고 물건도 제대로 꺼내오지 못하고, 방금 시킨 것을 잊어먹고 엉뚱한 소리를 할 정도면 이들 부부의 건망증은 상당히 중증이라고 하겠다.
다른 우스개로 건망증과 치매의 진단법을 알려주는 것도 있다.
남자가 소변을 보다가 “이걸 언제 써먹었더라?” 하면 건망증이고, “이게 어디에 쓰는 물건이지?” 하면 치매라고 한다. 또한 볼일을 보고 지퍼를 안 올리면 건망증이고, 지퍼를 안 내리고 볼일을 보면 치매라고 한다.
그리고 자기가 사는 집 주소를 잊어먹으면 건망증이고, 자기 집이 어디인지 모르면 치매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아내의 생일을 잊어먹으면 건망증이고, 아내의 얼굴을 잊어먹으면 치매라고 한다.
끝으로 자기의 망각증세를 걱정하고 있으면 건망증이고, 망각증세에 대해 아무 걱정이 없으면 치매라고 한다.
그냥 웃고 넘길 우스개가 아니라 정말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야기다.
나도 종종 깜빡할 때가 있다.
출근할 때 휴대전화를 안 가져가는 일은 다반사이고, 갑자기 내 주민등록번호나 전화번호가 생각나지 않을 때도 있다. 은행 계좌번호도 하나 외우고 있지만 막상 기재하려고 하면 번호가 앞뒤로 오락가락하여 혼선을 빚곤 한다.
무엇보다 당황스러운 것은 길거리에서 아는 이와 마주쳤는데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경우이다. “아, 누구!” 하며 시원하게 반가움을 표시하고 싶은데, 재깍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다. 한참 지나서야 “참, 누구였지!” 하지만 이미 기차는 떠난 뒤다.
건망증은 의학용어로 ‘단기 기억 장애’로 뇌의 검색 능력이 일시적으로 떨어지는 증세라고 한다. 인간의 뇌세포는 30세를 넘으면 감퇴하기 시작하므로 나이가 들수록 기억력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하겠다.
특히 긴장이나 압박감으로 인한 스트레스, 피로와 수면 부족, 미디어 중독 따위가 있으면 더 심해진다고 한다. 고혈압이나 당뇨 같은 만성질환도 건망증의 원인이라고 하니 조심할 일이다.
나도 한때는 텔레비전 퀴즈 프로그램을 보면서 출연자들보다 답을 먼저 맞히고는 “아유! 저것도 몰라?” 하며 열을 올리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대화를 하다가도 갑자기 어떤 낱말이 생각나지 않고, 드라마에서 배우 백일섭씨를 보고도 “저게 누구더라?”하고 한참 머리를 굴려야 하는 형편이니, ‘나도 다 됐구나!’ 하고 자괴감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내가 이것을 비관적으로 생각하느냐면 결코 그렇지는 않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말이 있듯이, 세상일은 마음먹기에 달렸기 때문이다. ‘자살’을 거꾸로 하면 ‘살자’가 되고, ‘불가능’의 뜻을 가진 ‘impossible’도 점 하나만 찍으면 ‘나는 할 수 있다(I’m possible)’가 된다.
‘희망이 아무 데도 없다’는 문장인 ‘Hope is no where’도 띄어쓰기만 달리 하면 ‘희망은 지금 여기에 있다(Hope is now here)’가 되지 않는가. 때로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니까 건망증도 노쇠 현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생각을 바꾸어 신의 은총으로 보면 어떨까? 자기 위안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한번 따져보자. 우리가 만약 자신이 겪은 일을 하나도 잊어먹지 않고 머리에 담고 지낸다면 어떻게 될까?
사람이 살아가는데 즐겁고 행복한 일만 있는가? 슬픈 일, 괴로운 일, 분한 일, 안타까운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누구와 다투거나, 무슨 사고를 당하거나, 시험에 떨어지거나, 아까운 물건을 잃어버리거나, 누구에게 속아서 손해를 입는 등 좋지 않은 일을 수없이 겪는 것이다.
그런 것들이 머리에 잔뜩 들어차 가지고 자꾸 떠오른다면 과연 마음이 편하겠는가. 나이가 들수록 기억의 분량도 많아질 텐데 그것들을 고스란히 머릿속에 쌓아둔다면 얼마나 힘들겠는가.
다행히 옷의 먼지를 털 듯, 세탁을 하듯 과거의 기억을 털어버릴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슬픔과 고통을 당하고도 시간의 경과와 더불어 마음의 평온과 웃음을 되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고 보면 우리가 의식하든 아니하든 지난 일을 망각할 수 있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건망증이 심해진다고 걱정하거나 슬퍼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의 축복을 받고 있다고 기뻐해야 하지 않겠는가.
반가워요, 건망증! 함께 놀아요, 건망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