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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땅콩 회항’

드라마 ‘땅콩 회항’

by 운영자 2015.02.06

‘땅콩 회항’ 사건은 막장 드라마적 요소에 인기 드라마의 구성요건을 고루 갖췄다. 막장 드라마는 욕망과 불륜, 음모와 폭력, 사랑과 배신, 출생의 비밀, 신데렐라로 시청자의 흥미를 유발한다. “이래도 안 볼 거야” 협박하듯 자극적 요소를 망라한다.시청자들은 욕을 하면서도 내재된 욕망의 대리만족을 느끼며 채널을 고정시킨다. “막장 드라마 같다”는 말은 사회규범 일탈의 상징어가 됐다.

‘땅콩 회항’ 사건이 발생한 공간은 흥미를 끌기에 충분하다. 평생 한 번 타볼까 말까한 퍼스트클래스석에 앉은 신데렐라 같은 대한항공 부사장이 주인공이다.

여승무원이 땅콩을 봉지째 서비스하자 사무장을 불러 매뉴얼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폭언과 폭행이 불거졌다는 것. 뉴욕∼인천 간 퍼스트클래스석 왕복 항공권 가격은 1,000만∼1,200만 원. 이코노미석(일반석) 가격의 5배가 넘는다.

주제는 ‘갑(甲)질의 횡포’. 대한항공 부사장은 기장에게 회항을 요구했고, 사무장을 내리라고 지시했다. 언론은 갑(甲)질에 대한 을(乙)의 분노가 극에 치달은 사건이라는 속보로 시너지 효과를 냈다.

백화점 지하주차장에서 VIP 모녀 고객이 주차 도우미 아르바이트생의 무릎을 꿇리고 입에 담기 어려운 폭언을 퍼부었다는 뉴스가 불거져 ‘갑질 횡포’ 주제는 더욱 돋보였다.

한진그룹 회장의 등장은 ‘땅콩 회항’ 드라마의 비중을 높였다. 사건 발생 후 “(자식)교육 잘못시키고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고 사과했으나 여론의 반응은 싸늘했다. 갑의 횡포를 우려한 재판부가 이례적인 증인 채택을 함에 따라 증언대에 선 한진그룹 회장은 수의를 입고 피고석에 앉은 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사무장이 대한항공에 근무하면 회사가 어떤 불이익도 주지 말라고 지시했고, 약속드리겠다”고 증언했다.

드라마가 갈등을 부추기며 시청률을 올리듯, 사무장과 여승무원 간의 ‘위증 논란’, 국토부 진상조사 과정 개입설, 허위 진술과 은폐 등 갈등요인이 얽히고설키었다. 결심공판에서도 “폭행했다” “안 했다”

증인과 피의자가 팽팽하게 맞섰다. 선망의 대상이던 스튜어디스의 인기는 덩달아 추락했다.

질질 끄는 드라마에 시청자들이 식상해 하듯, ‘땅콩 회항’ 공판은 속전속결로 진행되어 관심을 끈다. 형사재판이 기소된 지 27일 만에 결심공판이 열렸다. ‘중요 사건’으로 분류되어 빠르게 진행됐다.

피의자의 ‘증거 동의’ 등 초고속처리 속내가 집행유예 가능성을 염두에 둔 꼼수가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선고공판은 열흘 뒤에 열린다.

검찰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에게 징역 3년을 구형했다. “사적인 권위로 법질서를 무력화하고 공적 운송수단을 사적으로 통제함으로써 항공기의 안전을 위협한 중대 범죄”라고 단정했으며 “진지한 자성의 결과를 찾기 어렵다”며 구형 이유를 설명했다. 드라마는 대부분 화해와 용서로 마무리된다.

‘땅콩 회항’ 드라마가 유종의 미를 거두려면 ‘가진 자’에 대한 공분도 깔려 있는 만큼 진정성 있는 사과와 뼈를 깎는 자성만이 거듭나는 계기가 될 것이다.